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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조선의 9번타자, 올스타전 리허설을 마치다

조회수 2017. 6. 23. 07: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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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말. 아직 승부는 몰랐다. 홈 팀이 5-3으로 앞섰지만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2사 3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은 9번 타자. 보통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 없는 타순이다.

그러나 상대 배터리는 조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카운트 2-1에서 4구째. 포수가 힐끗 벤치를 쳐다보더니 사인을 준다.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134㎞짜리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휘어져 나가며 정확하게 떨어졌다. 타자의 배트가 끌려나올 수 밖에 없는 커맨드였다.

그런데 타자는 꿈쩍도 않는다. 이건 말이 안된다. 마치 유인구가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따져보자. 다음은 잘 맞고 있는 1번 타자다. 상대는 당연히 9번에서 끊으려 할 것이다. 그럼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는 게 100%다. 즉 스트라이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그걸 역이용한 영리한 볼배합이었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타자는 이미 거기까지 읽고 있었는데.

수비쪽은 허탈하다. 괜히 볼 하나만 손해 본 셈이다. 카운트 3-1로 몰리자 이번에는 진짜로 어쩔 수 없었다. 김강률의 5구째 146㎞짜리 패스트볼이 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9번 타자는 갑자기 4번 타자 같은 공격적인 스윙을 했다. 용서 없는 완벽한 반응이었다. 우익수 앞으로 향하는 적시타. 3루 주자는 편하게 걸어서 홈을 밟았다. 6-3이 됐다.

5회에 그가 정해준 스코어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다시 한번 9번 타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같았다. 7회, 때가 이르렀다. 이번에는 1사 1, 3루였다. 상대는 병살타를 기대하며 슬라이더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거기 당할 타자가 아니었다. 마치 손으로 굴리듯, 유격수 가장 깊은 곳으로 땅볼을 쳐냈다. 어렵사리 잡았지만 던질 곳이 없었다. 7-3이 되면서 1사 1,2루로 기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홈 팀은 여기서 4점을 보태며 상대의 항복을 받아냈다. 


김태형 감독의 불길한 예감 

원정 팀 감독은 주초 광주 시리즈에 앞서 담당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KIA는 왜 그렇게 잘 나가는 거예요?” 거 참. 물어보는 질문하고는. 가뜩이나 1등하고 붙으러 가면서 속 시끄러운데. 상대 팀 장점을 얘기하라니…. 그래도 어쩌나, 그게 일인데.

뻔한 답이려니 했는데 그의 답은 좀 독특했다. 보통은 ▶ 막강한 선발 투수진 ▶ 최형우와 버나디나의 가세 ▶ 포수 보강 등을 꼽는다. 그러나 김태형 감독은 다른 2명을 꼽았다. 김선빈과 안치홍 콤비였다.

“확실한 유격수와 2루수가 복귀한 것이 가장 크죠. 이렇게 잘 해주는 키스톤 콤비면 팀 전력의 절반은 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여기까지는 뭐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나간다. “물론 최형우의 가세도 크죠. 그러나 김선빈, 안치홍의 공수 활약이 팀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겁니다. 둘이 있기에 최형우 등 중심 타자들도 살아나는 것이죠.”

최형우 보다 김선빈, 안치홍이라니. 기사 제목 뽑기야 딱 좋은 테마지만, 정말 그렇게 봐도 괜찮은 건가? 하긴 2연패한 챔피언 팀 감독의 얘기다. 누가 감히 토를 달겠나.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해야지.

하긴 맞는 말일 것이다. 대들보 2개가 들어와 떡~하니 버텨주니 팀이 안 달라지고 배기겠나. 반대로 생각해 보자. 전임 감독이 왜 그랬겠나. 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걸 그렇게 걱정하고, 한사코 말려보려 하지 않았나.

어쨌든 김태형 감독의 진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 신뢰성은 하필 이번 시리즈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두 키스톤 콤비는 2경기에서 나란히 6안타씩 치면서 펄펄 날았다.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올스타전 리허설 

사실 이번 광주 시리즈는 올스타전 리허설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림과 나눔 양쪽 팬 투표를 압도적으로 리드하고 있는 팀들간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치업도 볼만했다. 비 때문에 하루 연기된 1차전은 헥터 노에시와 더스틴 니퍼트의 대결이었다. 그 다음날은 양현종을 함덕주+이영하가 더블 마크하기로 했다. 서로 필승의 의지를 담은 최강 카드로 베팅한 것이다.

하지만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은 뜻밖의 반전을 맞아야 했다. 시리즈 2게임이 너무나 일방적인 승부로 끝나 버린 탓이다. 이유는 홈 팀의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었다. 첫날 니퍼트를 넉아웃시키더니, 둘째날도 여전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틀 동안 31점이나 뽑아내는 가공할 득점력이었다. 원정 팀은 이렇다할 저항도 못 해보고 백기를 흔들어야 했다.

외형상으로는 그랬다. 1차전은 김주찬이, 2차전은 안치홍이 돋보였다. 하지만 공격력의 진면목은 다른 데 있다. 1번~9번까지 어디 한 곳 쉬어갈 데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9번이 문제다. 그는 시리즈 2경기에서 모두 3안타씩 쳤다. 그것도 평소에는 안 그러다가 주자만 있으면 꼭 ‘사람 없는 데’다 친다.

그의 타율은 자그마치 .378이다. 타격 1위다. 이건 말도 안되는 사기 캐릭터다. 덩치 크고, 수십억씩 연봉 받는 타자들이 수두룩한데 겨우 8천만원짜리 전역 병장이 4할 가까운 타율이라니. 

   타순별 타율 

타순     타석      타율

 2번      67       .328

 3번       6       .333

 6번      16       .563

 7번      34       .353

 8번        2       .000

 9번     108      .398

그냥 잘 치는 것도 아니다. 주자가 있으면 더 난리다. 득점권 타율도 리그에서 톱이다.

덕분에 그에게는 이상한 별명들도 수두룩하게 붙었다. ‘9번 타자계의 최형우’, ‘조선의 9번 타자’ 등등이다.

주자 없음  .318

주자 있음  .452

  득점권    .485  

그렇게 잘 치는 타자를 4번 안시키고 9번에 놔두는 감독도 이상하다. “(웃으며) 가끔은 그냥 4번 시킬까 고민도 한다. 하지만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자리를 맡고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 공격은 조금씩 쉬어가라는 의미가 포함됐다. 아무래도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서는 것과 나중에 나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당하는 팀에게는 충격이 더 크다. 괜히 더 긴장하게 된다. 넋 놓고 있다가 맞으면 더 아프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에 대한 지지도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중이다. 올스타 팬투표 나눔팀 유격수 자리를 독주하고 있다. 2위(한화 하석주)와는 거의 더블 스코어 차이다. 뿐만 아니라, 최다 득표자인 최형우마저 바짝 추격하고 있다. 3명을 뽑는 외야수 자리라는 프리미엄을 제외하고 보면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러다가 홈런 레이스에 출전한다는 소리도 나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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