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모의 Respect] 한국 축구를 위한 젊은 축구인의 제언

조회수 2017. 6. 19. 09: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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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과 문화가 변하지 않는데 구조와 시스템만 변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모두가 '문제가 심각하다'다고 말하는 한국 축구계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의 시각.
청춘 FC, 웨스트햄 유소년팀에서 일한 한국의 젊은 축구인 배태한 분석관이 말하는 한국 축구의 문제와 고민해야 할 방향.
이것이 정답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나 그것을 떠나서 한국 축구에 대해 걱정하는 모두가 생각해볼 계기가 되기를.
지난 2016년 런던에서 만났던 당시의 배태한 분석관의 모습. 그는 영국에서 축구를 공부하고 또 분석관으로 일했지만, 만날 때마다 한국 축구에 대한 걱정, 또 그 자신의 비전에 대해 말하곤 했다. 
"기자님, 한국 축구가 많이 아픕니다.
제가 감히 한국 축구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꼭 우리가 그동안 나눴던 화두를 던져보고 싶습니다." 

카타르 원정에서 당한 2-3 패배, 뒤이어진 슈틸리케 감독 경질. 최근 한국 축구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더 나아가서는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아주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축구 지도자, 축구 선수, 축구팬 너나할 것 없이 현재 축구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또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아닌 영국 런던에 나와 유럽 축구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축구 기자로서, 그러나 한국을 떠나 있더라도 나 역시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하고 있던 중에 위에 인용한 문장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그동안 영국 런던에서 여러차례 만나 그 때마다 영국 축구는 물론 한국 축구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았던 배태한 전력분석관으로부터였다.

그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그와 대화를 나눈 후에 나는 그동안 그와 내가 주고 받았던 한국 축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 그와 나 둘이 아닌 더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과 함께 공유해보기로 했다.

아래서 소개할 배 분석관의 생각은 그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이 옳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영국의 축구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배태한이라는 한국의 젊은 축구인의 제언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 한국의 축구인들, 또 축구팬들 모두가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하고 싶다.

이번 칼럼의 내용은 한국의 축구계에 보내는 한국의 젊은 축구인의 제언이다.

웨스트햄 유소년팀에서 전력분석관으로 일했던 배태한 전력분석관. 

* 배태한 전력분석관 프로필


영국 사우스햄튼 솔렌트 대학 학사 
웨스트햄 유소년팀 전력분석관 역임
청춘 FC 전력분석관으로 활동
스포츠코드코리아 보조 전력분석관
KFA D 코치 자격증 Level 1, 2 코치 자격증 보유

이성모 : 반갑습니다. 저는 배태한 분석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이 칼럼을 읽을 독자분들 중에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본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배태한 :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에서 축구코칭과 분석을 공부하고 웨스트햄 유소년팀에서 전력분석관으로 일했던 배태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10년 전인 2007년부터 축구에 꿈을 가지고 조금씩 공부해왔구요. 이후 한국에서 고3 여름이었던 2008년부터 남서울대 기록분석연구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공부를 시작한이후 더 넓은 세상에 공부를 하고자 군전역후 2012년 영국으로 출국, 2013년 영국에 있는 사우스햄튼 솔랜트대학의 축구학과에서 축구코칭과 사회학을 중심으로 공부했고 졸업이후엔 영국의 치체스터대학에서 스포츠분석석사과정을 공부하던중,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후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제 경력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를 드리자면, 2008년 기록분석연구소에서 분석원을 시작으로, 2014년 스포츠코드에서 보조분석원, 2013년 가을부터 2016년 여름까진 프리미어리그 현지통신원, 2015년 KBS 2TV를 통해 방영된었던 청춘 FC에서 분석관으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의 아카데미팀에서 15, 16세팀 분석관으로 일했습니다.

이성모 : 오늘 이 인터뷰는 배 분석관이 그동안 느꼈고 또 생각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준비한 인터뷰입니다. 

그런데 본론인 한국 축구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물어보고 싶은데요. 배 분석관의 가장 최근의 경력이 웨스트햄 유소년팀 전력분석관인데, 잉글랜드의 유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잉글랜드의 U-20 월드컵 우승을 지켜본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들의 우승의 비결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지요?

배태한 : 사실 웨스트햄에 있는 유소년 선수들 중에서도 충분히 스쿼드에 합류할만큼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볼수없어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잉글랜드가 그만큼 넓고 깊은 유소년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결과론적으로만 이야기하기엔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다는것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는것이고 또한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제가 2012년부터 잉글랜드의 학교나 여러 현장에서 코칭과 분석을 하며 느낀 그들의 우승비결은 '장기적인 플랜에 의한 교육'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유소년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성장' 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의 '우승'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적어도 유소년에게 있어서 '단기적인 성과의 좋은 성적'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성장'에 더 큰 의미를 두었던것이 잉글랜드가 좋은 성과를 이루어낸 이유이지 않나 그렇게 의견을 내봅니다.

제가 영국축구협회에서 Level1, Level2 코칭과정을 거치고 영국축구협회 직원들과 이야기하며 알게되었던것은 그들은 국제대회에서의 성적과 프리미어리그에서 낮은 비율의 잉글랜드 출신 선수 등과 같은 축구에 대한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 잉글랜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은 단순히 선수 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선수만을 양성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생활체육에서부터 좋은선수를 발견할수있도록 Level1과 같은 낮은 단계의 축구지도자자격증을 많은 사람들이 취득할 수 있도록 유도했구요. 이와 더불어 좋은선수들을 양성할수있는 '축구코치 와 축구교육자'를 양성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제가 몸으로 느꼈던 그들의 교육의 방향은 '창의성'에 목적을 두었고 선수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있는 환경을 만들기위해 창의적인 선수를 코칭할수있고 또 창의적인 선수들의 창의성과 능력을 스탯이 아닌 잠재적 가능성으로 측정할수있는 축구교육자를 양성하기위해 힘써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선수육성방법과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해결하기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직간접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축구현장이 아닌 대학에서 경험한 '잉글랜드의 축구교육' 은 축구 코치뿐만아니라 분석관,스포츠사이언티스트, 피지오테라피스트 그리고 마케터, 언론인 등 실제로 축구산업전반에 필요한 인재들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습니다. 지역 FA에서는 스포츠혹은 축구관련 학과의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등 필드위의 창의성 뿐만아니라 필드 바깥쪽에 필요한 인재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왜 자신이 배우고 있는 공부가 현장에 필요한지에대해 고민할수 있게끔 그리고 더 좋은 발전 방안을 만들어낼수있게끔 하도록 하는 '교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성모 :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알기로 배 분석관은 영국에서 유학하기 전인 군인시절에도 한국 축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국방부의 초대를 받아 상무팀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배태한 : 제가 2010년 8월에 입대한 후, 군에 있는 2년간 군에서 제가 할수 있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제가 훈련소에 있으면서 준비했던 첫번째 제안서가 '상무팀의 축구전문인력 선발' 이었습니다.

실제로 자대를 배치 받은 이후 이등병이던 시절에 국방부와 대화하고 국군체육부대의 초대를 받아 제 황금같았던 첫휴가로 상무팀을 방문해 제 제안서가 가지는 의미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때 제가 말씀 드렸던 내용의 핵심은 선수의 선발이 중요한 만큼 '축구 산업을 같이 이끌어가야하는 축구코치 및 분석관, 마케터, 언론'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는것이었습니다. 군에 있는 2년 동안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군에 봉사하며 경험을 쌓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후 제가 제출했던 두번째 제안서는 '국군tv의 상주 상무 중계와 군장병들의 주말에 K리그 관람을 옵션으로 추가하자'라는 것이었는데요, 20대 초반의 군장병이 잠재적인 국내 축구팬이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던 제안이었습니다. 종교활동뿐 만아니라 실제 부대에 가까운 축구팀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국내축구와 잠재적 축구팬층이라고 할수있는 젊은 남성들이 국내 프로축구와 더 많은 접촉을 할 수 있다면 이들이 전역한후에도 축구장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구요. 국군 TV를 통해 상주상무경기를 보여준다는것은 국내축구를 방송해주는 중계가 많이 없었기때문에 조금이라도 군장병들에게 축구를 노출 시킬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의 제안이기도 했습니다.

청춘 FC에서 활동할 당시 배태한 분석관의 모습(오른쪽) 

이성모 : 배 분석관은 전역 후 영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꾸준히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학위 논문 주제가 유교와 한국 축구계의 연관성에 대한 것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우스햄튼 솔랜트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영국의 학교와 한국에 있는 학교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3년간 학교의 학생 엠버서더를 맡아서 했습니다.  단기적으로 4박 5일 혹은 9박 10일의 캠프차원의 지도자 연수및 방문으로는 그나라의 지도철학과 교육철학을 몸으로 충분히 느끼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 대학에 한국에 있는 축구학과 혹은 스포츠학과와 교류하도록 하여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의 교환학생제도를 개설하고 3개월정도의 섬머캠프를 통해 학생신분이 아닌 국내축구코치선생님들이 영국에서 교육받을수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런 교류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축구연구의 중심이 되길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학중에 호남대학교의 축구학과와 MOU를 체결했고 제가 학교를 떠난이후 MOU가 유지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알수없지만 앞으로 더많은 영국,혹은 스페인 및 다양한 국가의 학교와 국내대학이 축구연구를 함께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는바입니다. 

제가 유교와 한국축구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실 한국 축구가 가지고있는 문제점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축구팬들과 많은 언론인들께서 지적하시는 우리 축구의 문제점들 중 하나가 경기장에서의 창의성 부족인데, 저는 과연 우리가 지적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들이 과연 축구에만 존재하는지, 혹은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닌지에 대해 오랜시간 고민해보게 됐습니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소통의 부재, ‘정과 우리’라는 ‘학벌과 인맥’의 다른 이름, 재벌공화국, 뜨거운 교육열, 높은 성적을 바라는 승리지상주의,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강도 높은 경쟁, 꿈이 아닌 시험을 위한 공부, 최악의 청년실업률과 비정상적인 공무원시험의 인기, 높은 청소년 자살율과 반비례하는 우리들의 행복도와 삶의 대한 만족감 그리고 'YOLO Life'의 대두 등등.

그런 모습들에서 우리 축구선수들이 오랜시간 운동장에서 꿈을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눈물과 땀을 흘리지만 실제 축구경기에선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이 연상됐고, 만약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축구에도 있다면 그곳에는 필히 그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제가 영국에서 공부와 일을 하면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의 생각을 듣다보니 한국사회와 축구를 조금은 국내에 있었다면 바라보지 못했을 한국의 모습들에 대해 국외에서 관찰자로써 주관적으로 또는 객관적으로 한국 사회와 축구를 문화라는 코드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모 : 자, 배 분석관은 지금 방금 언급한 '유교식 문화'가 한국 축구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번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배태한 :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유교가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의 창의성에 끼치는 영향'이자 제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에서의 유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네요.

최대한 짧게 정리를 하자면 여러 논문과 학술지에 의하면 유교는 정도전이라는 주자학자가 이성계라는 인물의 조선건국을 위해 제시한 국가철학이었습니다. 새시대를 위해서는 과거의 기성세력들을 제압할수 있는 철학과 종교를 필요로 했고 이에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이야기하며 구시대를 대표하는 불교를 탄압하였고, 정국초반 불안할수있는 새왕조의 정치적입지를 확고히 하기위해 절대왕권의 논리를 가지고있던 유교를 새시대인 조선의 중심철학이자 가르침으로 채택했습니다.

한 학술지에서는 이 유교의 근간을 이루는 '삼강오륜'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각자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에 따라 개인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이 있고, 이런 인관관계는 굉장히 수직적이고 불공평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한국사회가 서양과 비교해봤을때 수직적인 인간과계와 집단주의적 사고를 보여준다는것 역시 저는 유교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찾을수있었습니다. 사실 수직적인 인간관계의 공동체가 맺어진다는 것은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사람에 의해 내 역할과 책임이 한정되어진다는것이고 이는 소통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하게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유교라는 학문이 무작정 나쁜것이고 서양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것은 아님을 이야기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21세기의 한국은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시대가 아닌 우리모두가 주권자이고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에 살고있으니 그런 시대에 맞는 생각과 생활양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성모 : 자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겠습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유교라는 사상의 측면이 아니라 그런 부분들이 축구에선 어떻게 드러나는지 구체적으로 좀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요?

얼마전 부천을 방문한 니폼니시 전 감독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교육이 잘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무언가를 가르치면 받고자 하는 의욕도 있고, 팀이 세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인내심도 강합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었습니다. (중략) 한국 선수들은 말을 잘 안합니다. 침묵이 최고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그러면 경기장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시대의 한국 선수들은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과연 우리는 니폼니시 전 감독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런지요.

2014년 월드컵 대표팀을 함께했던 안톤 두 사트니에 전 코치 역시 한국축구의 근본적 문화가 대회에 맞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유럽과 문화가 아주 다르다. 선수들은 아주 순수하고, 착하다. 바로 그게 한국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순진한 것 자체는 한국의 문화이므로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때로 치사해질 필요도 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할텐데, 대표팀에 오면 똑같아지더라.”

세이고 이케다 전 코치 또한 “한국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이것을 하라, 이것을 하지말라’는 식의 말을 듣고 자라 매우 순하다. 윗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게 뭐냐며 맞받아치는 일이없다. 나쁜 점은 (한국 선수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이야기한건 비단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 코치들 뿐만 아니라 박지성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엠버서더 역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감독과 자유 토론과 언쟁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은 팀에 수동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고 감독의 명령에 그저 수긍한다."

이성모 : 배 분석관이 말한 그런 문화적인 부분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들도 있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한국 축구에 있어서 조직력, 팀을 위한 희생 등은 그동안 우리 축구의 원동력이기도 했는데요.

네, 기자님 말씀처럼 한국 축구의 장점으로 우리가 꼽는것이 있다면 투지, 정신력, 성실함과 근면함, 빠른 결정, 그리고 팀을 위한 희생과 조직력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을 위한 희생과 조직력 그리고 빠른 결정으로 인해 사라진 토론과 대화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선수들의 개성과 그들의 색깔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유소년 시절 번뜩이던 재능이 왜 성인이 되면 자취를 감추는지, 천재라고 이야기되던 어느 꼬마 미술인이 한국미술입시를 위해 자신의 색깔을 버려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가 나와 다르지 않은, 나와 같은 색을 가진 사람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봐야합니다. 다른 색깔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한국 사회에선 '나대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이성모 : 그렇다면 그런 관점에서 본인이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실제로 일하면서 경험한 한국과는 다른 면은 어떤 부분들이 있었을까요?

배태한 : 웨스트햄에서 분석관으로 일하면서 사실 처음에 힘들었던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던 15~16세 팀은 매일 다음날 있을 훈련을 위해 코칭스태프 미팅을 그 전날 오후에 했는데, 팀에 합류하고 첫날 코치와 스포츠사이언티스트가 한 선수의 컨디션을 가지고 너무 언성을 높여서 저러다 싸움 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매일이 그랬거든요.

코칭스태프 미팅엔 코치, 골키퍼코치, 스포츠사이언티스트, 분석관, 피지오테라피스트가 참여하는데 각 분야의 전문가로써 오늘 있었던 훈련, 내일 있을 훈련에 대해 전문가적인 입장을 내어놓았습니다. 최종결정권을 가지고있는 코치의 선택은 항상 코칭스태프 미팅 이후에 각 분야별 의견을 들은 이후 결정되었는데 이런 문화는 코칭스태프와 선수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됐습니다.

코치는 선수들을 'Mate(친구)'라 부르며 인사하고, 선수 역시 도움이 필요하면 축구화끈을 묶어달라고 코치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구성도는 수직적일지 몰라도 실제 그들의 소통은 어디에서든 수평적이었습니다. 팀에서 분석 관련한 프로젝트들은 제가 전담을 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길 바랐습니다. 팀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수 없다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다는것이기도 했고 또 팀에 대한 헌신이나 동료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했고요. 저 역시 웨스트햄의 철학과 조직문화가 선수들과 팀을 성장시키기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믿었고 그런 의미에서 몸은 힘들었어도 웨스트햄에서의 생활은 즐거웠습니다.

또한 소통하며 선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는것은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선수들은 훈련 전 후, 경기 전 후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고, 코칭스태프는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 노력했구요. 그리고 그런 코칭스태프의 노력은 선수들의 존중과 코칭스태프에 대한 권위로 돌아왔습니다.

다양하고 역동적인 상황에서 끊임없이 필드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적절한 판단을 행해야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문화적인 조건으로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태도는 선수들의 성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국선수들과 일을 할때 사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인데, 한번은 경기를 마치고 분석할만한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해 경기영상을 선수에게 보여주었더니, 그 선수의 첫마디가 ‘죄송합니다’ 였습니다. 저에게는 그 선수의 ‘죄송합니다’란 말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죄송할 게 없었는데, 그저 같이 영상을 보고 대화하고 더 나은 경기력을 위해 소통하고픈 것이었는데 이미 선수에게 있어 코칭스태프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갑'이였고 선수 자신은 '을'이었던거지요. 이러한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수동적인 선수들의 태도는 매순간 번뜩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경기장에서 조금도 도움이 될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모 : 유교적인 축구 문화가 문제다라는 말은 일리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지적은 현재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지금 당면해 있는 현실적 문제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배태한 : 지금 이렇게 제가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제가 영국에서 축구를 공부해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국 축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낼수있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서 반대로 우리 축구계에 감히 드리고 싶은 질문은 우리 한국 축구에 있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축구 국가대표팀에 국한것인지 아니면 우리 축구 자체에 대한 것인지'입니다.

현재 한국 축구팬들께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저 역시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해결법으로써 제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변화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고 또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지만 막상 새로운 생각과 인물을 받아줄수 없는 문화에 그 사람들이 봉착하게 된다면 결국 기존의 문화에 흡수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깐요.

그렇기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물러나고 새로운 기술위원장이 들어서는것 만큼 중요한 것이 재능 있는 어린 축구선수가 팀 내에서의 선후배관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축구를 그만두는 것, 부상으로 인해 대학까지 운동을 하던 선수의 미래와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선수의 은퇴 이후의 삶, 막내 축구코치가 코칭 스태프사이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생각을 이야기할수 없는 환경에 대해서 공론화하고 문제화하며 더 고민해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며칠전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 동반사퇴한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부터 짧은 기간에 자리를 내려왔던 수없이 많은 국내외 감독까지. 이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던 축구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내릴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우리축구와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축구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말 핵심이 되는 문제가 무었인지, 단지 감독들과 대한축구협회등 눈에 보이는 시스템과 구조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우리가 가지고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공론화하지 못했던것이 아닌가에 대해 고민해보았으면합니다.

권위적인 축구지도자와 수동적인 선수의 인간관계, 수직적인 선후배관계, 냉철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 화제성을 먼저 생각하는 언론, 한국 축구의 큰 그림보다 지금 당장의 관중동원과 성과에 급한 프런트와 행정, 20세 대표팀에게도 성장이 아닌 승리만을 바라는 축구팬들까지 저부터 시작해 우리 모두 반성해야하는 때이자 우리 모두 함께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해갈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주장하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 축구에서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정책의 변화만큼 중요한것은 우리의 태도와 생각 그리고 사고방식의 변화입니다.

이성모 : 곧 한국 축구에 더 중요한 문제는 시스템이기보다 문화다 이런 말씀이군요? 

배태한 :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같은 스포츠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와 이들 조직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행정들은 현재만 문제였던 것이 아닌 스포츠 그리고 축구가 한반도에 뿌리내린 이후 늘 존재해왔습니다.

사실 이런 스포츠조직들의 모습들은 한국의 기업들과 재벌, 대학교등의 세금횡령문제, 정계유착등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고, 우리 역시 그들의 일부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이야기드린것이 바로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유교적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라는것이었구요.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 심지어 우리가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라고 이야기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축구협회에 대한 불만은 존재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축구인들과 정치인들 경제인들의 줄다리기는 여전했습니다.

오랜 시간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했던 서기원씨가 2006년 쓴 ‘서기원의 축구사랑’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실제로 우리 축구인들은 월드컵을 위해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축구 관계자 몇이 그저 그런 자리에 구색 맞추기로 앉아 있는것이 고작이다. 일차적인 책임은 축구계에 있다 해도 행정 위주, 관 주도,정치권 개입, 특히 축구인을 가볍게 아는 풍조가 그 탓이리라.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현대는 전문화 시대요, 전문가 사회다.”

지금 많은분들이 지적하는 행정, 정치, 구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또한 그의 또다른 글을 살펴보면,

“1968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축구를 되살리고자 우리 축구협회는 당시 서독의 유명한 축구 전도사인 크라우천을 초빙했다. 그 해 5월, 서울에서 열린 제 10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서의 우승이 1차 목표였다. 그러나 공동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대회가 끝나자 협회는 물론 축구인들은 그에게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각 지방을 돌며 우리 청소년들에게 축구의 기본을 가르쳤다.

크라우천은 우리 축구계에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성장하려면 유소년 축구의 제도 개선과 활성화, 지도자 교육과 육성, 심판의 자질 향상, 이들을 지원할 행정력 강화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시기에 역시 서독의 클라마는 일본축구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 해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클라마도 일본에게 크라우천과 똑같은 건의를 했다. 일본은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반면 우리는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곧 흘렸다.

그리고 2000년 현재,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 축구는 일본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성적도 그렇지만 경기 내용에서 우리는 완전히 일본에 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런 격차는 지금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32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외국의 감독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실패한 이유는 언어와 문화적 정서적 차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심각한 이유가 있다. 축구의 이해도나 관점 등 그들과 우리 축구인들의 각기 다른 축구관, 여기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갈등, 그리고 배타적이고 비협조적인 우리 축구계의 태도가 그것들이었다.”

서기원씨의 글을 제가 발췌하여 굳이 1968년과 2001년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017년 오늘의 문제가 그 당시에도 똑같이 존재했고 같은 고민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 문화를 이야기하고 우리 사고방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것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와 같은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성모 : 즉, 당면한 문제만 바라보기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이죠? 

배 분석관이 서두에서 축구 시스템, 문화의 변화 크게 두 카테고리를 언급했었는데 문화적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선 지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문화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곧 시스템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배태한 :  축구협회와 한국축구의 시스템 구조적인 문제역시 변해야합니다. 반드시 변해야합니다. 저도 변해야 한다는 것에 100프로 동의하며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특히 엘리트 체육중심에서 생활 체육으로 학교 축구에서 클럽 중심으로 변해야하는 구조적인 문제는 정말 출산율의 감소로 인재풀이 줄어갈수밖에 없는 우리인구와 이야기해봤을때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도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생각과 문화가 변하지 않는데 구조와 시스템만 변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책의 변화만으로는 성공을 이끌 수 없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은 새로운 선진 축구 시스템과 과학기술의 도입보다,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그의 장단점을 따져 한국 축구에 맞는 문화를 형성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즉 시스템이 잘 작용하기위해서는 그를 위한 문화라는 것이 뒷받침 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성모 : 문화와 시스템, 물론 그 두 가지는 상호간에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제 배 분석관이 생각하는 해결책 혹은 비전에 대해서도 한 번 들어볼까요?

배태한 : 영국 축구 역시 많은 위기가 있었고 그에 대한 많은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결국 그들이 집중한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키워낼수 있는 선수를 만들기위해 '창의적인 환경과 창의적으로 아이들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수있는 교육자'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자했습니다.

우리 역시 사람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제가 코칭을 공부하다가 분석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기자님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분석이 한국에 필요한 이유는 바로 '선수들이 생각하는 시간'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똑같은 기술과 백패스만 하는 선수들이 아닌 이승우와 같이 볼을 상황에 따라 길게도 드리블하고 짧게도 드리블하는 선수를 양성하고 싶다면 유교식 문화에 대한 지적은 시기적으로 적절합니다.

우리 축구의 올바른 방향성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지단과 크루이프 그리고 호나우딩뉴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모든 기술을 길거리축구에서 배웠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 역시 제가 하고 싶은 주장과 범주를 함께합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축구공, 더 좋은 축구장을 주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하는 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좋은 시설과 교과서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교육방법과 좋은 선생님입니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단 고기를 낚는 방법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이라 믿습니다.

제가 일했던 잉글랜드의 웨스트햄에서 사용하는 훈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치는 상황을 만들어 선수들이 그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선수들에게 자기 자신의 방법에 맞게 느리지만 스스로 방법을 해결하도록 유도합니다. 물론 훈련중에 전혀 간섭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을 경기중에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을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상황에 대한 답을 찾을수있도록 기다려주고 믿어주는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기술적인 훈련의 경우는 매 훈련과 경기가 끝나고 영상을 보며 어느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분석관과 함께 돌려보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판단력이 아닌 자세와 기술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시 코치들과 상의해 선수에게 필요한 개인세션을 짜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카데미팀과 계약하는 선수의 학부모들은 팀과 계약할때 반드시 훈련중에는 조용히 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훈련장에 있는 코치들 역시 동일합니다. 코치들은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동안에는 최소한의 간섭만 합니다. 르네 뮬레스틴은 터치라인근처에서 지속적으로 코치와 학부모가 선수들을 향해 소리친다면, 선수들은 스스로 훈련에서 어떻게 판단해야하는지에 대한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교육철학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즉 잉글랜드에서 코치의 역할은 훈련을 세팅하고 선수들이 상황에 던져지면 자기주도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기위해 판단하는 과정을 길러주는것이라 할수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그런 훈련방법이 실제로 적용이 되기란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지금보다는 더 주어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수있는 선수들을 육성해낼수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웨스트햄 유소년 경기 도중 터치라인에서 선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배태한 전력분석관. 

이성모 : 자, 한국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김에 한 번 조금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죠. 지난번에 런던에서 만났을 때 배 분석관은 ‘K리그를 아시아 축구의 허브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을 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의견에 대해서 독자 여러분과 한번 생각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과 생각할 주제를 제시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태한 : 사실 이 부분 역시 시스템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요. 물론 협회와 관련한 재벌가, 정치적 문제와는 조금 다른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축구의 마케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론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프로축구가 왜 이사아 시장을 개척해야하고 마케팅의 방향을 아시아로 잡아야하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 프로축구는 대기업의 스폰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아직도 많은 구단의 경기장 역시 클럽의 소속이 아닌 시,도의 소속이지요. 대기업의 후원과 시도의 후원에 의존해야하는 축구단은 온연히 축구를 위한 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프로축구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 중에 한가지는 더 많은 팬들을 끌어모으는 것 만큼 다양한 소스의 수입원을 만들어내며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이지지 않다는 것이 우리 축구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후원과 시도의 후원이 물론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조금씩 줄이고 축구단이 독립적으로 자생력있게 돈을 팀에서 순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국내에서 자본을 공급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라면 외부자본을 찾아봐야합니다. 저는 이 핵심이 아시아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K리그를 아시아의 축구허브이자 아시아판 프리미어리그로 키우자는 이야기를 드린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데요. 즉 아시아쿼터를 더 늘이자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프로팀에서 더 다양한 아시아인들이 경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큰 힘을 쓰지 못했지만, 한국프로축구는 국내에서의 인기와 자본규모에 비교했을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만들어왔습니다. 중국프로팀을 맡고 있는 외국감독들이 토너먼트에서 한국팀을 만날때 가장 경계를 하기도 할만큼 아시아에서 한국축구의 경쟁력은 충분합니다.

저는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인도, 파키스탄등 다양한 국가의 아시아선수들이 한국에서 뛰는 것을 꿈꾸고 목표로 하길 바랍니다.

물론 저의 이 생각 속에는 분명히 우리가 감수해야 할 페널티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가 무었일까를 이야기해보자면 잉글랜드 축구가 그랬듯 우리 선수들이 국내에서 뛸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것이 큰 페널티가 되겠지요. 만약 앞으로 승강제가 1,2부로 밖에 운영이 안 된다면, 또 올 시즌 프로에서 실업으로 전환한 고양과 같은 팀이 많이 나오게 된다면 외국선수의 유입은 우리 선수의 취업에 큰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물론 현재 대한체육회와 협회는 1-7부리그까지 승강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또 시도하는 중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페널티를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 선수들 역시 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다른 축구 시장으로 나아갈수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것인데, 우리 선수들의 타국진출은 선수 한 명의 진출이 아닌 에이전트와 광고사 그리고 언론미디어의 진출로 그 영역이 확대 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동남아 선수의 국내리그 진출이 그러하기도하구요. 쯔엉의 국내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겐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외국인선수의 유입으로 인해 잉글랜드는 유소년 시스템의 필요성을 더욱이 인지하게 되었고 그런 판단 속에 유소년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준높은 외국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잉글리쉬를 배출하기 위해 영국축구협회와 각 클럽들은 수없이 많은 연구와 발전방안을 내놓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더 좋은 유소년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더 좋은 축구지도자를 배출해내는데 몰두했고, 더 나은 시스템속에서 유소년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위기속에서 기회를 찾았고 결국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아시아 선수들과 우리 무대에서 함께 한다는것은 우리가 밀려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경쟁적이고 건강한 한국프로축구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수르가 경남 FC를 매입하기위해서는 그에 맞는 상품성이 필요합니다. 즉 필요해야 사러온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아시아축구를 광고할 수 있고 또 다양한 아시아인들이 한국의 경기를 보게된다면 자연스럽게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와 마케팅이 필요할수 밖 에 없겠지요. 해외자본에 의존하는 수입구조는 정상적일순 없지만, 국제화시대에서 해외자본이 없다는것은 그만큼 세계에서 상품성이 없는 축구라는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우리 축구를 세일즈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꿈꾸는 아시아의 허브란 이렇습니다.

더 많은 아시아선수들이 국내에 들어오고 그런 선수들과 함께 그 나라의 미디어와 광고들이 들어오고 인도선수가 속해있는 팀과 파키스탄선수가 속해있는 팀이 마치 손흥민과 오카자키의 경기를 보듯 K리그를 보고 더 많은 우리 선수들이 국내프로팀에 지목받지못한 선수가 국내에서 축구를 할 수 없다고 좌절하지않고 해외에 진출할수있으며 (TNT라던지 독립축구단의 역할은 국내축구에 있어 그런의미에서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입니다), 아시아의 재능과 스타를 찾기위해 한국에 들어와 K리그 경기를 바라보는 유럽의 스카우트들의 모습과 아시아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구단주들이 한국을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유럽의 재능있는 선수들이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하기위해 트라이얼을 받듯이, 재능있는 아시아의 선수들이 경남 FC에 입단하기 위해 트라이얼을 받는 모습들은 앞으로 한국프로축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축구를 아시아에 개방하고 아시아의 중심에서 재능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성모 : 자 배 분석관의 'K리그의 프리미어리그화'에 대한 생각도 잘 들었습니다. 오늘 여러가지 주제로 깊이 있게 이야길 나눠봤는데요, 마지막으로 본인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배태한 : 제가 일했던 웨스트햄이 세계적인 선수를 양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몇가지는 첫 번째가 웨스트햄이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잉글랜드 팀이었다는것이고, 두 번째는 영국의 교육이었습니다.

영국의 대학교수업은 보통 대강의라고 해서 교수가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대규모의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 있고 그 후 학생 스스로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셀프 스터디 그 다음은 세미나라고 해서 대강의 시간에 이야기했던 주제에 대해 소규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수와 토론하는 시간 그 이후 다시 셀프스터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수와 학생의 1v1 튜토리얼로 구성되는데, 이때의 교육을 보면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학생은 셀프스터디를 통해 교수의 생각을 검증하고 다양한 책과 논문을 읽으며 자신의 논리를 만들고 이후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학생들과 교수와 토론하는 시간을 거치고 다시 셀프스터디를 통해 토론을 통해 깨졌던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다시 공부하고 이후 교수와 1대1 상담을 통해 앞으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고자하는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들의 이런 교육 시스템은 축구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웨스트햄에서의 분석 역시 이러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는데는 좋은 운동장과 과학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교육과 문화라는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축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난 수백년동안 우리 삶을 감싸왔던 유교라는 권위적인 그림자를 지워내는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습관이자 생활의 일부였던 모습이 우리 축구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었나에 대해 다함께 고민해보고 공론화 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진정 우리 전체의 문제였다고 공감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함께 바꿔나갈수있는 용기를 내어보았으면합니다.

그래서 두렵지만 제가 먼저 이제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 미래의 세대에겐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자고 용기내어 이야기해봅니다. 더 나은 선수를 키워내기위해, 더 좋은 축구 교육자를 만들기위해, 더 나은 축구환경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우리축구를 위해 우리는 교육의 의미를 재정의해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선수들이 코치선생님들에게 먼저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주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을 키워내기 위해서 탈권위적인 리더쉽과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토대로 창의성과 자율을 보장받을수있는 조직 환경 그리고 그속에서 선수들 스스로 책임감을 느낄수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모 : 잘 알겠습니다. 오늘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자세한 의견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태한 : 감사합니다. 제 의견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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