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코리안 리포트]류현진의 3승과 두려움과의 투쟁

조회수 2017. 6. 18. 19: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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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전고투 끝에 신시내티 꺾고 시즌 첫 원정 승리가 두려움을 이겨내는 발판이 되길

 '어떤 스포츠보다 두려움이 많은 종목이 야구다' -미국 야구 명언


 미국 야구계에 흘러 내려오는 이 말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속성을 잘 드러냅니다.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나타나 내 자리를 차지하면 어쩌나?’ 라는 모든 스포츠에서의 일반적인 두려움뿐이 아닙니다. 존중받는 3할 타자가 10번 중에 7번이나 아웃당하는 야구는 잦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면역이 돼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타자에게는 ‘155km의 강속구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그런 공을 던지는 투수도 ‘몸쪽에 붙였다가 타자가 맞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투수는 ‘내가 던진 공을 타자가 쳐 담장을 넘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가하면, ‘여기서 못 막으면 강판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위기에서는 차라리 내게 공을 오지 말라.’고 바라는 수비에서의 두려움이나, ‘내 타석까지 오지 말고 앞 타자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기회에서 실패에 대한 타자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렇게 경우의 수 만큼이나 많은 두려움을 나열할 수 있는 종목, 그래서 야구는 ‘실패와 두려움과의 싸움’이라고도 합니다.

5이닝 동안 투구수 105개를 던지는 고전 속에서도 2실점으로 위기를 넘긴 류현진이 시즌 첫 원정 승리이자 3승째를 달성했습니다. ⓒ다저스SNS

 18일 미국 신시내티의 레즈 홈구장 아메리칸볼파크에서 벌어진 LA 다저스 원정 경기 선발 투수는 류현진(30)이었는데, 시작부터 불안했습니다.

다저스가 1회초 2번 시거와 4번 벨린저의 연속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지만 1회말 류현진은 1번 해밀턴의 안타와 2번 코자트의 2루타, 좌익수 테일러의 더듬더듬 수비 플레이까지 겹치며 바로 동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2회말에도 안타와 볼넷 등, 실점은 없었지만 이닝을 넘기기가 힘겨웠습니다. 2사 주자 1,2루에서 만난 해밀턴과는 10구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마지막 149.3km의 강속구가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자 해밀턴은 방망이와 헬멧을 던지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해밀턴 대신 더그아웃에서 고함친 브라이언 프라이스 감독이 퇴장 당했습니다.

 1-1이던 3회초 다저스 타선이 폭발했습니다.

선두 타자로 나선 9번 류현진의 날카로운 땅볼을 레즈 유격수 코자트가 놓치며 시작됐습니다. 1사 후에 시거가 볼넷을 고르자 3번 테일러가 좌중간 담장을 때리는 장타로 둘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3-1 리드. 그리고 슈퍼 루키 벨린저가 시즌 19호 홈런을 터뜨려 5-1을 만들었고, 5번 피더슨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면서 6-1이 됐습니다. 2와⅓이닝 동안에 삼진을 5개나 잡는 구위를 지녔지만 아직 투수로 숙성하지 못한 레즈 루키 선발 워저하우스키는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렇게 다저스가 맹폭을 하며 점차를 벌여가는 것을 유심히 보고 꼼꼼히 기록을 해가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작은 두려움과 함께 맴돈 그 생각은 바로 ‘과연 류현진은 오늘 경기 5이닝을 넘길 수 있을까?’ 1,2회에 보여준 구위나 경기 내용은 사실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곧바로 3회말 현실이 됐습니다.

류현진은 선두 2번 코자트부터 3번 보토, 4번 듀발까지 3연속 안타를 맞았습니다. 모두 단타였지만 하나 같이 정타로 맞은 공이었습니다. 맞은 구종은 패스트볼-커터-커터로 모두 속구 종류였습니다. 이날도 속구가 힘을 내지 못하는 아쉬움.

그리고 6번 수아레즈와는 볼카운트 1-2로 앞서고도 볼넷을 허용하며 밀어내기 점수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6-2의 리드였지만 순식간에 그 리드는 사라질 수 있는 큰 위기 상황.

3회에 앞서고 있는데도 불펜에서는 이미 구원 투수가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노아웃에 만루가 이어지면서 류현진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두려움이 닥쳤지만, 정작 투수 자신에게 닥친 큰 두려움과는 또 비교가 안 됐을 겁니다.

 류현진은 당당히 이 위기에 맞섰고 운도 따랐습니다.

지난번 대결에서 홈런을 맞았던 쉐블러에게 초구 118km의 느린 커브를 던졌다가 또 정타를 맞았습니다. 코스는 2루 베이스 우측으로 내야 중앙을 뚫을 기세. 그런데 다저스는 수비 쉬프트를 가동했고 바로 공의 길목에 유격수 시거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원아웃 그러나 주자는 여전히 만루.

위기 탈출을 위해 류현진은 더욱 적극적이 됐습니다. 142.5km 커터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류현진은 149.5km의 속구로 전력투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타자 페라자도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돌렸는데, 정말 강한 타구였지만 류현진의 글러브를 뚫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공을 낚아챈 류현진은 포수 그란달에게, 그리고 그란달은 1루수 벨린저에게 연결하면서 순식간에 1-2-3의 그림 같은 병살타가 나왔습니다.

 5개의 타구가 모두 잘 맞았지만 수비 작전과 류현진의 호수비로 큰 위기를 최소 실점으로 막은 숨 가쁜 이닝이었습니다.

3회까지 투구수가 무려 78개. 그만큼 힘든 경기 초반이었고, 4회말에는 2사후에 해밀턴에게 거의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3루타를 맞았지만 코자트를 삼진으로 잡고 위기를 다시 넘겼습니다. 투구수는 이미 88개로 한 이닝 평균 22개였습니다.

 이날 류현진은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참을성을 계속해서 테스트했습니다.

 5회말 선두 타자 보토에게 던진 146km 속구가 가운데로 몰리며 우중간을 뚫는 2루타.

또 다저스 구원 투수가 몸을 풀었습니다. 이젠 1점만 더 내줘도 교체될 것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영리한 류현진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아니, 꼭 영리하지 않더라도 그 상황이면 마운드의 투수는 직감합니다. 자신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류현진은 4번 듀발을 땅을 치는 폭포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 첫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날 포수 그란달의 11번째 블로킹이 삼진과 연결됐습니다. (5회까지 블로킹 11번! 얼마나 많은 유인구를 던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아레스와는 6구 승부 끝에 우익수 플라이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5회 투아웃에서 쉐블러와의 승부는 인상적이면서도 짠했습니다.

초구 150km의 이날 가장 빠른 공이 갑자기 날아들자 쉐블러는 헛스윙. 2구째는 151.8km로 구속을 더 끌어 올렸고 파울볼로 투 스트라이크. 류현진은 곧바로 3구째 151.3km의 코스 좋은 인사이드 강속구로 이닝을 마치는 듯 했습니다.

쉐블러도 삼진을 직감한 듯 뒤로 크게 물러났는데, 루키 구심 슈어워터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날 레즈 타자들도 볼 판정에 불만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1회 선두 해밀턴과의 풀카운트 승부 끝에 맞은 안타 역시 4구째 스트라이크 같은 공이 볼로 판정되면서 결국 실점까지 이어졌습니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한 가운데 류현진과 쉐블러는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4구째 124km 체인지업도 파울이 됐고, 이어 던진 151.5km의 강속구 또 파울이었습니다. 여기서 류현진은 34km의 구속을 낮춘 117.5km의 커브볼을 던졌습니다. 쉐블러의 방망이에 걸렸지만 땅볼은 1루수 벨린저에게 잡혔습니다. 


고비 고비를 두려움을 딛고 잘 넘긴 류현진은 홈런 4개 등을 치며 지원한 타선의 도움까지 얻고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다저스SNS

 아주 길고 조마조마하고, 한편 불안하고 한편 대담한 5이닝이었습니다.

7-2로 앞선 가운데 승리 투수의 요건 5회를 채운 류현진의 힘겨웠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다저스는 푸이그의 2홈런 등으로 점수를 보태 결국 10-2로 승리했고, 류현진은 시즌 3승째를 거뒀습니다.

이날 5이닝 동안 8안타를 맞고 2실점, 볼넷은 2개에 삼진 7개를 잡았습니다. 투구수 105개 중에 스트라이크가 65개였고, 시즌 평균자책점은 4.35가 됐습니다. 꽤 많은 안타를 허용했지만 MLB의 홈런 공장 중 하나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홈런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유인구를 많이 던지면서 투구수도 급증했지만 고비 고비 위기를 큰 피해 없이 넘어갔고, 결국은 타선의 도움도 나와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류현진은 2년 전 수술부터 시작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길고 힘겨운 재활을 거쳐 떨어진 구위를 회복하기 위한 요즘의 과정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두려움과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배짱 좋은 류현진이지만 타자를 상대하기가 부상 전보다 훨씬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처럼 마운드에서 과감하고 빠른 템포의 공격성도 아직은 자주 보여주지 못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현재 자신의 어깨와 팔 상태에서 ‘최상의 싸우는 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에 시행착오도 당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5회말 쉐블러와의 타석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4개의 속구 평균 구속이 151.2km이었습니다. 5회에 151.8km의 가장 빠른 공이 나왔다면 2회, 4회에 그런 속구를 못 던질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투구수 100개를 넘기고도 계속 150km 넘는 강속구를 뿌렸습니다.

로버츠 감독은 이날 경기에 앞서 류현진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진이가 혼신의 피칭을 보이며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경기 페이스를 지키려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때론 1회에 모든 것이 결정 나고 마는 게 야구다.”

로버츠 감독은 또한 “현진이는 두 등판 전에 초반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경기를 보여줬다. 그런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6월1일 카디널스전 6이닝 1실점 투구수 77개 경기)

 감독의 말대로 1회부터 전력투구를 했다면 오히려 투구수도 줄이고 더욱 효과적인 피칭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6일전 같은 상대 레즈전 홈에서 3개의 홈런을 맞은 경험과 원정 구장의 악명 높은 홈런 부담, 그리고 속구에 대한 흔들리는 자신감으로 인한 두려움이 결국 정면 대결보다는 유인구 위주의 아슬아슬 피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숱한 위기를 넘겼고 소중한 승리라는 결과를 얻어낸 18일 신시내티전이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당당한 도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함께. 어차피 실패와의 싸움이 야구이니까.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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