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 원사이드컷] 한국 축구 대표팀의 상황이 괴롭고 두렵다

조회수 2017. 6. 14.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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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 v 카타르 매치 리뷰
'믿어달라.' 라고 말했던 슈틸리케 감독의 운명은?

괴롭다. 그리고 두렵다.

이 글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한국 축구는 그래도 위기에 몰리면 강했다.그래서 그동안 아무리 대표팀의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카타르에게 패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감독 유임, 코치 선임, 조기 소집 등 단기 처방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성과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모두가 단순한 바람이었나보다. 3위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1점 차, 남은 경기는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두 경기. 지난 2013년 상황보다 더 나쁘다.

한국 축구, 정말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카타르 전, 선발 명단 (KFA.COM)

# 준비 단계, 그럼 이라크 전은 왜 한건가?

지난 7일, 대표팀은 이라크와의 평가전 때 처음으로 3-4-3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카타르가 이번 최종 예선에서 종종 스리백을 사용했기에 이라크 전은 뭔가 그래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실 이라크 전의 내용이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의 컨디션을 실전에서 점검하고, 남은 5일 동안 전술적 디테일과 심리적 준비를 통해 카타르 전을 준비했을 것이다.

감독, 선수, 행정까지 모든 것이 함께 잘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나온다. 카타르 전의 준비 과정을 전부 다 알 수 없지만 언론을 통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불안 요소가 감지됐다. 현지 시간으로 7일 오후 이라크와 평가전을 치른 후, 출전 시간이 많았던 8명은 다음 날 8일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정상 훈련을 진행했다. 그런데 9일에도 전체 휴식을 취했다. 카타르에 입성한 10일은 카타르 외교 문제로 제3국을 경유하여 이동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훈련을 하지 않았다. 선수단과 가장 가깝게 있는 코칭스텝과 감독이 결정 했겠지만 9일에는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대표팀은 두바이에 집결한 지난 3일, 완전체로 훈련을 시작했다. 코칭스텝은 팀 훈련과 이라크 전을 통해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 했을 것이다. 두바이에서 카타르로 향하는 이동 시간이 있다지만 A매치 기간동안 6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지난 이라크 전에서 선발로 출전한 5명이 오늘도 선발로 나섰고 교체 투입된 5명도 오늘 선발로 나왔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라크 전에서 포메이션 실험을 한 것인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선발 명단을 구성한 것인가?

이틀 전 유럽 예선, 아일랜드와 오스트리아의 경기를 해설했다. 아일랜드는 오스트리아 전을 준비하며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치렀고 철저히 오스트리아에 대비한 전략과 구성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선발 명단은 단 한 자리 변화가 있었고 포메이션과 경기 컨셉은 두 경기가 동일했고 아일랜드는 자신들이 준비한 패턴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오늘 카타르를 상대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는 에어컨이 가동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대표팀에게 이라크 전은 단지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90분 간의 단순 노동이였을까?

내가 부족해서인지 아무리 봐도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200회 많은 패스수, 2배 많은 크로스. 하지만 수비 문제는...
점유율 63.4%, 하지만 인터셉트는 카타르보다 11개나 적었다.

# 전략적 준비

최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때, 경기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날씨에 대한 선수의 적응 여부는 초반 10분 만에 파악 할 수 있지만 오늘 경기 초반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몸놀림은 평균 이상으로 느껴졌다. 카타르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나왔다. 압델 카림, 무사 등 기량이 알려진양쪽 윙백이 공격적으로 전진했고 수비 시작점이 높다보니 한국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히려 후방에서 직선적인 플레이를 통해 괜찮은 장면이 나왔다. 전방으로 공을 투입한 이후에 위에서 시작하는 수비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경기 초반, 상황 인식에 의한 간결하고 직선적인 공격 전개 (JTBC 중계화면)
후방에서 연결되는 롱 패스 또한 선수들의 임기응변이지 준비된 전략은 아닌 듯 했다. (JTBC 중계화면)

하지만 이 직선적인 패턴을 사전에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후방에서 한국영, 기성용이 공을 잡아 롱 패스를 시도 할 때, 수비로부터 공을 받는 위치나 타이밍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과 스타팅 포인트 역시 좋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확한 킥이 연결되지 않았고 킥이 좋더라도 전방에서는 잡아내지 못했다. 몇 번 나온 좋은 장면은 선수들의 임기응변 이였다.

전반 초중반, 경기를 보면서 카타르의 높은 전진에 한국이 당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카타르가 파이브백으로 내려서서 수비 위주로 경기를 시작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래서 하프라인 뒤에서 오래 공을 갖고 있으면서 기록상에서만 높은 수치의 점유율을 원했던걸까? 보통 감독은 시간대 별, 상황 별로 경기 세부 전략을 준비한다. 상대가 예상과 다른 전략으로 경기를 운영하면 우리도 그것에 대비한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준비는 훈련을 통해 할 수 있고, 국가대표급 선수 레벨에서는 이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필드에서 진행되는 전술 훈련은 뇌가 바빠지는거지 몸이 바빠지는게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전반전에는 한국이 전략적으로 준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 흐름은 절묘한 타이밍에 계속 끊겼다

내용을 떠나 반드시 승리라는 결과가 필요한 경기였다. 그런데 패하다보니 글을 쓰는 나조차뭐라도 핑계거리를 찾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페레라 주심의 판정은 일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의도가 있는 것 보다는 능력이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심판 판정을 떠나 오늘 한국은 경기 흐름을 타지 못했다.

전반 25분, 하산 칼리드에게 아주 훌륭한 프리킥으로 첫 골을 내줬다. 우려와 달리 실점 직후 경기 분위기가 오히려 조금 나아지는 듯 했지만 34분, 손흥민이 팔 골절로 경기장을 떠났다. 이근호가 투입됐지만 실점과 부상 이탈이 예민한 시간에 연달아 발생하며 선수들은 전반 종료 순간까지 스스로의 플레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모든 페이스가 급격하게 저하됐다. 패스 속도가 느려졌고 공격적인 볼 터치가 적어졌다. 선수들은 자신의 플레이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이런 동작들이 반복되며 사소한 실수가 나왔다. 소위 말리는 경기가 전개되었다.

주장 기성용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는 하프타임이 필요했다. 15분 동안 전반전, 말렸던 흐름을 끊고 후반전 새로운 공기 속에서 경기를 시작해야 했다. 이런 경기에서는 그래서 하프타임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프타임의 주인공은 감독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후반전 시작 역시 대단히 좋지 않았다. 분위기 쇄신은 커녕 후반 1분 만에 추가 실점 위기가 있었고 6분 만에 아피프에게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카타르의 지공 상황에서 골키퍼 포함 8명의 선수가 수비 상황에 관여하고 있음에도 압박, 커버, 거리조절, 라인 컨트롤, 커뮤니케이션 등 수비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숫자상 다 갖춰진 수비가 아피프, 칼리드 단 두 명에게 농락당했다.

요즘 축구에서 피지컬에 대한 비중이 점점 커지지만 아무리 몸 상태가 잘 준비되어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수 없다. 전반전 실점 이후 한국 선수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동요했고 그것은 전반 종료까지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하프타임 동안 심리적인 동요는 전혀 회복되지 못했고 후반 6분 만에 비참한 추가 실점으로 이어졌다.

하프타임 때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그 얘기는 아마 세상에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3월, 팀내 상황을 외부로 유출하는 선수는 슈틸리케 감독이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심리적 동요에 따른 실수 #1
심리적 동요에 따른 실수 # 2

# 운도 더 잘 준비된 쪽으로 따른다

전반 34분, 손흥민의 부상으로 투입된 이근호와 후반 8분, 지동원과 교체한 황일수, 그리고 선발로 나선 이재성은 공격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몇 차례 키패스를 선보인 이재성은 후반 16분, 측면 돌파를 통해 기성용의 골을 도왔다. 32세 베테랑 이근호는 최전방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폭넓게 침투했다. 늦깍이 국가대표 황일수도 후반 25분, 황희찬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한국은 종료 20분 전, 2-2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와 흐름 모두 한국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4분 만에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두 번째 실점과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하며 또다시 하산 칼리드에게 실점했다. 동점골 이후 팀의 모든 무게 중심이 앞에 쏠려있었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동점골 이후의 밸런스 조절에 대한 아쉬움과 실수에 대해 언급했다. 세 번째 실점은 치명적이였다. 팀 에너지는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고 교체 투입된 남태희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재성은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 분투했다.

오늘 경기에 대해 ‘골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분명 황희찬, 황일수, 이근호, 이재성이 득점에 매우 가까운 장면을 만들었다. 두 골 모두 오른쪽 측면에서 잘 만들어진 일대일 상황에서 비롯됐고 공격에서 빛난 이재성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공을 투입시키며 2차 움직임을 통한 찬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중앙에서 콤비네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패스 앤 무브’의 반복이 필요하다.

“공을 동료에게 주면 또다시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을 곧바로 스피드 변화를 주면서 진행해야한다.”

그래야 공간이 생기고 상대 수비의 시선을 뺏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부분에 아쉬움이 있었다.

운도 부족했고 알 시브 골키퍼의 대단한 선방도 있었다. 하지만 카타르 역시 골에 가까운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대한 상상은 늘 흥미롭다. 그런데 그 상상은 우리만 하는게 아닌 상대도 하는 것이다.

카타르는 우리보다 잘 준비된 팀이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초가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8월 31일 홈에서 이란, 9월 5일 원정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해야 한다. 3위가 되면 B조 3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북중미 4위와 최종 승부를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낮은 확률이기에 어떻게든 A조 2위로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해야 한다. 3위 우즈베키스탄과 숭점 차이는 1점, 결국 우즈베키스탄에서 마지막 사투를 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며 브라질 월드컵의 과정에서 있었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4년 전, 최강희 감독이 긴급 소방수로 투입된 4년 전 최종예선 때 보다 더 나쁘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 모두 이긴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적은 커녕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한번쯤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야 한국 축구의 판을 전체적으로 갈아 엎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축구는 '월드컵 탈락'이라는 핵폭탄을 새싹으로 승화 시킬 내공이 부족하다. 현재 국내 축구 산업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축구의 암흑기‘가 올 수 도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 전체에서 축구가 갖고 있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

2017년 6월의 냉정한 현실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유능한 족집게 감독도 없고, 아시아 레벨에서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선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은 나가야 한다. 지금 하드를 포맷하기에는 백업해놓은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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