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토리] 사이드암의 진화 : 뉴타입 임기영, 고영표

조회수 2017. 6. 13. 16:52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2000년대 이전까지는 사이드암 에이스들이 꽤 있었다.   KBO리그 유일의 10년 연속 10승+ 및 100탈삼진+ 기록을 가진 이강철이 그렇고 93한국시리즈에서 문희수-선동열-송유석 3명의 해태 에이스를 상대로 혼자 15이닝 완투한 박충식도 있다. 한희민, 박정현 역시 당대의 최고 선발투수였다.

이후 흐름이 변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에이스급 선발투수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었다. 사이드암은 변화를 위주로 한 ‘변칙투구’이기 때문에 긴 이닝을 던지면 타자 눈에 익어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반대손 타자에 대한 약점 때문에 선발은 어렵다는 것도 있다. 실제로 사이드암 선발이 예고되면 상대팀은 천적인 좌타자를 전진배치하며 맞서기 마련이다. 

2012년 박현준이 선발 12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140kmh 중반의 빠른 공과 포크볼을 던지는 특이한 유형이었다. 게다가 승부조작 가담으로 리그를 떠났다.

선발 10승 사이드암이 다시 나타난 것은 2013년이다. 군복무 마치고 선발로 전환한 LG 우규민 147.1이닝 (선발 139이닝) ERA 3.91 (FIP3.42로 리그1위) 10승8패를 기록했다.  NC 이재학도 156.0이닝(선발 151.0이닝) ERA2.88(리그 2위) 10승5패로 합류했다.  이 둘은 2012년 박현준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10승+ 를 올린 전업 선발 사이드암이다. 

이들의 활약은 꾸준했다.  2013년-2016 선발등판기록에서 우규민은 573.1이닝 ERA 3.97,  이재학은 543.2이닝 ERA 3.87 이다.   외국인 제외 KBO리그 우완투수 중 ERA에서 이재학이 1위, 우규민이 3위다.  이닝은 우규민 3위, 이재학 5위다.  이 둘은 ‘사이드암 치고’ 성공한 선발투수가 아니라 같은 기간 모든 우완 투수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냈다.

2015년에는 NC 이태양이 137.1이닝 ERA 3.67로 10승 선발투수가 되었고 2016년에는 한명이 더 늘었다. 넥센 신재영이 168.2이닝 ERA 3.90 으로 외국인 투수 제외 선발 중 장원준, 양현종이 이어 ERA 3위, 이닝은 양현종, 유희관, 윤성환에 이어 리그 4위였다.

2017년에 또 사이드암 선발이 나타났다.  kt 고영표가 72.0이닝 ERA 4.25 4승6패, KIA 임기영이 74.1이닝 ERA 1.82 7승2패를 기록 중이다.  71.0이닝 ERA 3.04 한현희도 있다.

이쯤되면 사이드암 선발을 특이하고 새롭다 하기가 무색하다.  이미 4년 전부터 리그 우완의 최상위권은 대부분 사이드암 선발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계속 늘어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피칭은 우리가 알던 '사이드암'의 이미지와 좀 다르다.

일단 그들을 단순히 ‘기교파 투수’라고 하기가 애매하다. 구위파 투수는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타자를 상대하는게 특징이고, 기교파 투수는 삼진은 적지만 정교한 제구로 볼넷을 억제하고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며 마운드를 지킨다. 하지만 2013년 이후 리그에 등장한 사이드암 투수들은 그런 기교파가 아니다.

이재학은 2013년 이후 600.1이닝을 던지며 9이닝당 탈삼진 8.4개를 잡아냈다. 같은 기간 300이닝+ 투수 중 차우찬, 밴헤켄에 이어 3위다. 한현희는 8.3개로 5위다.  당대의 파워피처인 니퍼트, 양현종, 린드블럼, 김광현이 전부 그들보다 아래에 있다. 

639.0이닝을 던진 우규민은 삼진 숫자가 볼넷 숫자보다 3.46배 더 많다.  볼넷 당 삼진비율(SO/BB)에서 리그 전체 1위다.  한현희는 2.93 으로 전체 6위이고 외국인투수 제외하면 전체 3위다. 

올 시즌 등장한 뉴페이스 선발 고영표의 탈삼진 능력도 굉장하다. 9이닝 당 8.1개로 올해 50이닝+ 투수 중 6위다. 9이닝당 볼넷은 1.1개에 불과해서 SO/BB 7.2 로 전체 2위. 이들 뿐 아니라 우규민, 신재영, 한현희, 임기영 모두 삼진이 볼넷보다 3배 이상 많다. 리그 최상위권이다.  이렇게 삼진을 많이 잡아내는 투수들을 '기교파'라고 부르기엔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들을 '변칙투구'를 하는 투수라고 하기도 어렵다.  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승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리그 전체에서 타석당 투구수가 가장 적은 투수가 3.63개인 우규민이다. 제구가 별로 좋지 않은 이재학 조차 타석당 3.89개로 평균보다는 적다.  지난해 시즌 순위도 역시 사이드암 선발이 두드러진다.  2016년 우규민이 타석당 3.49개로 1위, 신재영이 3.69개로 6위다. 외국인 투수 제외하면 3위다.  공격적 승부는 올해의 사이드암 선발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신재영이 타석당 3.31개로 1위, 우규민이 3.55개로 3위, 고영표가 3.56개로 4위, 한현희 3.58개로 7위다.

그들이 마운드에 서면 타자는 당연히 빠른 정면승부에 대비한다. 하지만 거침없이 존을 공략해오는 사이드암 투수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이런 피칭을 단지 투구폼을 이유로 ‘변칙투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의 사이드암 투수들은 예외라기 보다는 대세다. 그리고 투수-타자 기술경쟁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2000년대 이후 타자의 성향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파워도 증가했다. 150kmh 정도의 구속도 타자를 제압하기 충분하지 않다. 타자들은 컨택에 치중하기 보다 강한 스윙으로 장타를 노린다. 그 결과가 꾸준히 이어진 홈런과 삼진의 동시 증가다. (이는 미국 MLB의 경향과도 일치한다)  이런 타자들을 이겨내는데 효율적인 것은 '조금 더 빠른 구속'이 아니라 '더 예리한 공의 움직임'이다.   구위는 속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잠시 퇴조했던 사이드암 투수가 대세가 된 것은 ‘무브먼트’에서 다른 투수보다 우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또다른 요인은 체인지업 장착이다.  커브, 슬라이더에 비해 이 구종의 역사는 짧다. 그리고 팔꿈치나 어깨에 부담이 적다. 선수생활기간이 길어지고 연봉 수준도 높아지면서 투수들은 더 잘던지는 방법 뿐 아니라 더 오래 던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체인지업은 그에 잘 맞는 기술이다.

게다가 '사이드암'에게는 더 특별한 효과가 있다.  낮은 팔각도는 체인지업 무브먼트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천적관계 극복의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체인지업은 반대손 타자 바깥쪽으로 휘며 떨어지는 움직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완 사이드암이 좌타자를 상대하기에 제격이다.

kt 고영표의 체인지업 투구 영상


커브와 슬라이더 의존도가 높은 우규민, 신재영이 클래식 타잎이라면 이재학은 새로운 사이드암 투수의 프로토 타잎이었다. 2014년-2016년 기간 중 그의 체인지업 비중은 43.7%로 거의 절반이다. 게다가 위력적이다. 헛스윙비율이 35.9%로 40% 이상 사용한 단일 구종 중 1위다. 하지만 2피치의 단조로움이 한계였다.

사이드암 투수들은 한번 더 진화했다. 고영표는 포심 27%를 던지는 동안 체인지업 31% 커브 20% 투심 22%를 던진다. 임기영은 포심 50%를 던지면서 체인지업 31% 슬리이더 19%를 던진다.

이들은 손등 방향으로 예리하게 꺽이는 체인지업에 더해 글러브 방향으로 크게 휘어나가는 슬라이더/커브를 장착한 것이다. 전통적 무기와 새로운 무기를 동시장착했고 좌우 반대방향을 움직이는 두개의 구종은 변화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타자 손방향 상성으로부터도 좀더 자유로와졌다.  이들이 그래서 '뉴타잎 사이드암'이다.  투수 개인의 노력과 재능은 물론이지만 그에 더해 리그 환경변화와 피칭기술의 진화가 그 배경에 있다.     

KIA 임기영 투구 H/L(2017년 6월 7일 한화전 완봉승)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