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모의 Respect] 호날두와 베일, 그 믹스트존 비하인드스토리

조회수 2017. 6. 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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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믹스트존에서 있었던 취재 비하인드스토리.
가볍게 윙크하고 엄지손가락 들어올리며 '미안하다'하던 베일,
100여 명의 기자들 중 '딱 한 명' 앞에서만 발길을 멈주던 호날두.
두 눈으로 직접 본 '우리 형'과 '작은 형'의 똑같은 점과 한 한국 칼럼니스트의 직업병(?).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직후 믹스트존에 모습을 드러낸 호날두. 기자의 눈앞에서 잠깐! 멈췄는데 자세한 전말은 아래 사진에서.

유럽 취재 현장을 다니다보면, 일반적인 기사로 전하기엔 그 형태가 조금 어울리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운 그런 소소한 비하인드스토리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의 축구팬들께 아주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볍고 재미있게 볼만한 한국의 축구기자가 유럽 축구 현장에서 직접 겪은 비하인드스토리를 전해보고자 합니다.(칼럼니스트 주)  

지금으로부터 약 1주일 전에 마무리 된 20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 현장 취재의 마지막 장소인 '믹스트존'(Mixed-zone)에서 있었던 일이다.

* 한국의 축구팬들이 읽는 많은 인터뷰 기사가 탄생하는 믹스트존(손흥민의 토트넘 경기 직후 인터뷰가 진행되는 곳이 바로 믹스트존) 이란 통상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돌아가기 전에 이곳을 지나가면서 취재기자들과 짧은 인터뷰를 갖는 공간을 뜻한다.

유럽 클럽 축구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답게 믹스트존에는 족히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여서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평소 EPL 경기와 비교해보면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에 해당하는 취재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수들이 이 모든 취재진과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나누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믹스트존에서의 인터뷰란 통상 제일 앞쪽에서 선수들이 나오면 그곳에서부터 출구쪽까지 걸어가는 동안 취재진이 선수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선수가 응하면 인터뷰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20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직후 믹스트존에 모여있는 취재기자들의 모습. 이날 믹스트존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여서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선수들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과연 이 수많은 기자들은 이곳에 모여서 뭘하고 있었던 걸까?

믹스트존에 도착해서 가만히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니, 그들 중 인터뷰를 목적으로 이 자리에 온 기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분명히 있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미 경험상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있는 이상 인터뷰 차례가 자신들에게까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걸 알면서도 그곳에서 선수들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지나가면 함께 기념사진을 찍거나 심지어는 사인을 받기도 했다.(이는 평상시 리그 경기 등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제재도 가능한 장면이지만, 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인 만큼 관리자들도 그를 특별히 제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믹스트존의 '분위기'를 다 파악한 나는 취재기자들로 가득한 가운데에서 좁은 틈을 파고 들어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나오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베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에서 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고 있는 베일. 

저 끝에서(너무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먼 끝에서) 걸어나온 베일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고 중간 정도까지 걸어나오다가 영국 기자들(정확히는 잉글랜드)의 무리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춰서 간단한 질의응답을 가졌다. 아마도 사우스햄튼, 토트넘 시절에 얼굴을 익힌 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베일이 영국에서 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는 사이, 나는 베일이 내 앞을 지나가면 무엇을 물어볼지를 열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몇가지 질문을 준비하기도 하고, 가능하면 한국 축구팬들에게 짧은 영상 메시지라도 남겨달라고 부탁해봐야겠다, 그리고 또 혹시 만약에라도 가능하면 사진도 하나 찍자고 해야겠다 등등 나름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영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베일이 어느덧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긴 했으나 걸음을 멈추는 대신 가볍게 윙크를 하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며(미안하다는 의미로) 그대로 날렵하게 나를 지나쳐 그 후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은 채 출구로 나가버렸다. '아...'라는 탄식을 지르기도 부족할만큼 눈깜빡할 사이에 모든 상황이 그렇게 종료되어 버렸다. 

베일과의 인터뷰에 실패한 나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그 실패로부터 두 가지를 깨달았다. 

1. 더 큰 소리로 박력 있게 상대 이름을 불러야한다.(상대가 어쩔 수 없이라도 일단 발길을 멈추도록!) 

2. 질문을 하고, 영상 메시지를 받고, 사진을 찍을 틈이 없다. 셋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다행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자.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해내리라라고 마음을 다 잡고 있던 그 순간, 아마도 그 믹스트존에 모인 기자들의 8할이(어쩌면 그 이상이) 기다렸던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결승전에서도 두 골을 터뜨리며 팀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호날두였다.(한국에선 '우리형'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이미 이날 믹스트존 직전에 모습을 드러냈던 기자회견장에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 상태였다.(대단히 이례적인 모습) 

믹스트존에 나온 후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직진!만 하던 호날두. 

현 시대 최고의 '축구 스타' 답게 호날두가 나타나자 믹스트존이 곧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날두는 본인이 스타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아는 선수다. 그는 누구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출구쪽을 향해 직진했는데(베일보다도 더 빠르고 당당하게), 그렇게 그냥 나가버리는 것 같던 찰나 그가 나의 바로 앞 쪽에서 멈춰섰다.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서 마음 속으로 '사진을 찍자고 할까' '한국 팬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할까'를 열심히 고민하다가 후자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건 나 혼자의 기념이고, 한국 팬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남긴다면 그건 모든 한국팬들의 기념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논리까지 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가 내 근처에서 멈춰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이유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누군가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자 잠시 멈춰선 호날두. 
이날 믹스트존에서 유일하게 호날두를 멈춰세우는데 성공한 여기자와 다정히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호날두. 부러워하는 주변의 시선들을 보시라.

그리고 호날두가 내 바로 인근에 있던(3미터 거리) 여기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이동하려는 찰나, 나는 잠시 전 베일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했던 데서 배운 교훈을 발휘하여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고 호날두 역시 나를 바라봤으나 그는 가볍게 윙크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다시 가속력을 붙여서 빛의 속도로 출구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생각들의 조합이었다.

1. 아...

2. 아니 저 녀석이?(혹은 저 '형'이?) 

3. 왜 나는 여자가 아닌가. 

4. 아니 근데 솔직히 나라도 여기자를 더 신경써줬을 것 같기도. 

5. 아니 그래도 너무 당당한데?!(믹스트존에 모인 기자들이 90퍼센트 이상이 남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6. 그래 역시 스타는 스타구나!

그리고 호날두가 믹스트존을 빠져나간 후(그 직후 대부분의 기자들도 자리를 떴다) 애써 속으로 '그래 호날두가 지금 유럽 축구 최고의 스타인데 벌써 인터뷰를 하면 싱겁지. 또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위안을 하며 기자실로 돌아오던 순간, 갑자기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뜻으로 가볍게 윙크를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는 그 포즈를 베일(별칭 '작은 형')과 호날두(별칭 '우리 형')가 똑같이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서 새벽 1시가 되어 이날의 취재현장을 마무리하면서 든 생각. 

1. 아니 베일은 저것까지 호날두를 따라하는 건가?

2. 아니지, 호날두가 따라하는 걸 수도.(그럴린 별로 없겠지만) 혹은 우연히 같을 수도.

3. 아니 근데 오늘 이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지?

이건 기사(일반기사)로 쓸 소재는 아니고 그렇다고 나 혼자 알긴 너무 아까운 이야기인데. 그래, '다음 칼럼'으로 쓰는 거야! 꼭 칼럼이라고 무겁고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하란 법이 있나, 가끔씩 이런 비하인드스토리도 독자분들 입장에선 새롭지 않을까?

라며 앞으로 더 많은 현장을 누비며 더 많은 비하인드스토리를 전할 수 있도록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직업병처럼)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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