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Express]무너진 폭군 조제알도, 할로웨이에 고개 숙이다
지난 주말 열렸던 UFC 212에서 오랫동안 UFC 페더급의 제왕으로 군림해 온 조제 알도가 경량급 신세력의 대표주자 맥스 할로웨이에게 KO로 무너졌습니다. 과거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나 앤더슨 실바가 참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격투기 팬들을 큰 충격에 빠뜨린 이번 알도의 패배를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축구 선수를 꿈꾸던 가난한 소년, 격투기 챔피언이 되다
브라질의 유일한 UFC 남성 챔피언으로서 자국 팬들의 마지막 자존심과 같았던 조제 알도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성공한 대표적인 ‘흙수저 챔피언’입니다. 어린 시절 알도는 많은 브라질 소년들이 그렇듯 축구 선수를 꿈꾸었는데, 아이들끼리 코치나 심판도 없이 모여서 축구를 하다 보니 늘 싸움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얻어맞는 데 신물이 나 격투기를 배우게 됩니다. 처음 시작한 무술은 카포에라였지만, 한 주짓수 코치가 축구 연습 중 싸우는 알도의 모습을 보고 체육관으로 초대하며 축구 선수를 꿈꾸던 이 소년은 점차 격투기 선수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도의 고향 마나우스는 격투가로서의 꿈을 펼치기에는 환경이 너무 척박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늘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주짓수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던 알도의 재능을 높게 본 주짓수 코치와 지인들이 돈을 모아서 알도에게 건네며 격투기의 메카 리오로 갈 것을 권유했고, 알도는 거기에 본인이 주짓수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합쳐 리오 행 비행기 편도 티켓을 삽니다. 브라질 최고의 명문 격투기 체육관으로 꼽히는 노바 유니오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죠.
리오에 도착한 알도의 호주머니엔 동전 한 푼 없었고, 어깨에 멘 옷가방 하나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노바 유니오 체육관까지 묵묵히 걸어서 도착한 알도는 그날부터 체육관에서 먹고 자며 훈련하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체육관 비를 낼 돈이 없었기에 청소를 도맡아 몸으로 때우고, 틈나는 대로 훈련에 끼어 땀을 흘리다 하루가 끝나면 불이 꺼진 체육관 귀퉁이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매일 밤 과연 옳은 결정을 내린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고향을 떠날 때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걸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잠든 알도를 매일 아침 깨워준 사람은 페드로 히조였습니다. 히조는 UFC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인 ‘어둠의 시절’ 브라질을 대표해 활약하던 일류 헤비급 종합격투가였습니다. 대선배 히조의 모습을 보며 UFC 챔피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된 알도에게 어느 날 종합격투기 출전 제안이 들어옵니다. 알도는 당연히 받아들였고, 1라운드 KO승을 거둡니다. 이 때 알도가 손에 쥔 돈은 350달러(한화 약 39만원), 지금 알도의 파이트머니에 비하면 푼돈에 가깝지만 당시 형편에서는 거금이었죠.
프로 선수로 활약하며 형편이 조금 나아진 알도는 체육관을 벗어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나오는 유명한 리오의 파벨라(빈민가)로 이주했는데, 이 때 평생을 함께 하게 될 부인 비비아니를 무에타이 시합장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비비아니는 빈민가에서 허덕이는 알도를 무시하기는 커녕 본인의 집에서 같이 살자며 손을 내밀었고, 비비아니의 아버지가 그럴 바엔 결혼식부터 일단 올리자고 제안해 일사천리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를 얻은 알도는 계속 승승장구했고, 2008년 드디어 미국 격투기 단체 WEC와의 계약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세계 격투기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UFC엔 알도의 체급인 페더급 이하 경량급은 존재하지 않았고, UFC의 모회사인 ZUFFA사는 WEC에서 경량급 흥행을 따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WEC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던 알도는 2009년 11월 마이크 브라운을 꺾고 WEC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다음 두 차례나 방어에 성공했고, 2010년 말 WEC가 UFC에 흡수 합병되며 UFC 초대 페더급 챔피언에 자동 등극하게 됩니다.
UFC에서도 알도는 왕좌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2015년 말 코너 맥그리거에게 패배를 당하기 전에는 무려 18연승에 UFC 타이틀을 일곱 차례나 방어했던 초특급 챔피언이었죠. 물론 맥그리거에게 당한 ‘13초 KO패’로 주춤했지만, 반 년 만에 돌아와 전 라이트급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와의 재대결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하며 잠정 챔피언에 등극했고, UFC 측이 맥그리거의 페더급 타이틀을 박탈하며 자동으로 다시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이번 경기는 알도가 맥그리거 전을 지우고 다시 위대한 챔피언으로서의 역사를 써내려 가는 첫 걸음이었죠.
조제 알도, 할로웨이의 젊음에 무릎 꿇다
하지만 이번 도전자가 너무 강했습니다. 잠정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두르고 알도를 기다려온 맥스 할로웨이는 스물한 살 때부터 UFC에서 활약해 온 신세대 파이터로, 이번 경기 전까지 10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컵 스완슨, 찰스 올리베이라, 제레미 스티븐스, 리카르도 라마스 등 페더급의 강호들이 줄줄이 무릎을 꿇었고, 최근에는 전 라이트급 챔피언 앤소니 페티스까지 할로웨이에게 KO로 무너졌었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두 선수는 타격의 고수들답게 치열하면서도 수준 높은 타격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챔피언 알도의 빠른 스피드와 노련한 경기 운영이 빛을 발했습니다. 최근 한껏 물오른 풋워크와 타격 콤비네이션으로 베테랑들을 압도했던 할로웨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죠.
하지만 2라운드 후반부터 할로웨이의 전진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알도의 얼굴에 할로웨이의 주먹이 자꾸 들어간다 싶더니 결국 운명의 3라운드, 할로웨이의 깔끔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속으로 적중되었습니다. 쓰러진 알도는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할로웨이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파운딩으로 안면을 두들겼고, 결국 보다 못 한 심판이 경기를 말리며 알도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충격적이었던 이 패배를 이해하려면 일단 알도의 스타일에 대해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 격투기 선수들도 타고난 능력치가 모두 다릅니다. 크게는 타격가, 그래플러, 주짓떼로 등으로 구분되지만, 각각 카테고리 안에서 스타일이 또 다양하게 나뉩니다. 알도는 코너 맥그리거 같은 타고난 핵주먹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번개 같은 스피드와 한 박자 빠른 타이밍, 천재적인 타격 센스를 십분 활용해 싸우는 타격가입니다. 민첩성이나 순발력, 탄력 등이 엄청나지만, 지구력이 뛰어난 타입은 아닙니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보통 경기 운영이 화려하고 시원시원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곤 합니다.
그런데 알도 같은 선수들은 순간 동작이 빠르고 그림 같아 매 경기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지만, 이를 경기 내내 계속 할 수는 없습니다. 한두 번 몰아쳐서 상대가 쓰러지지 않으면 다시 숨을 고르고 재정비할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알도의 경기는 대부분 페이스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실제 펀치나 킥을 많이 교환하기보다는 수싸움이 많고, 관중들이 왜 아무 것도 안하지 생각할 때 즈음이면 퍽! 하고 표범처럼 뛰어 들어갔다 나와 다음 찬스를 엿보죠.
이론적으로는 이런 상대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고 밀고 들어가는 게 답이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죠. 상대가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려 하면 알도는 그림 같은 풋워크와 위빙으로 피해 내며 상대의 얼굴에 잽을 날려 전의를 꺾습니다. 그것도 견디고 한 번 더 들어오려 하면 세찬 콤비네이션으로 상대를 몰아쳐 기를 죽여 버립니다. 이러면 상대도 더 이상 못 들어가고 공격을 멈출 수 밖 에 없습니다. 무턱대고 전진하다가는 본인이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은 거죠. 이렇게 상대 가슴 속 자신감에 균열이 생기면 알도는 그 사이에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본인의 리듬으로 싸움을 이끌어 나갑니다.
할로웨이에겐 있고 알도에겐 없던 것
하지만 할로웨이는 알도의 게임을 부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첫 번째 비결은 할로웨이가 알도보다 ‘더 크고 길다는’ 점입니다. 실전에 가까운 종합격투기에서는 긴 리치나 큰 키의 이점이 극대화됩니다. 주먹으로만 치고받는 복싱에서는 단신의 선수가 머리를 흔들며 상대 품 안으로 파고들어 숏블로우를 노릴 수 있지만, 종합격투기에서는 장신의 선수가 긴 팔다리를 이용해 원거리 타격과 클린치로 그런 상대를 괴롭힐 방법이 너무 많거든요. 할로웨이는 경기 초반 알도의 스피드에 고전했지만, 그 리듬에 익숙해지자 점점 페이스를 높여가며 압박 전략을 폈습니다. 2라운드 중후반이나 3라운드를 보면 양 선수 간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걸 볼 수 있습니다. 할로웨이의 압박에 밀려 알도가 한 발짝 더 들어오는 걸 허용한 거죠. 상대가 채드 멘데스나 프랭키 에드가처럼 단신이었다면 알도는 어렵지 않게 돌아 나갈 수 있었겠지만, 할로웨이는 그 순간 알도를 괴롭힐 수 있는 체격의 우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비결은 당연히 할로웨이가 가진 정상급의 타격 기술입니다. 순간 이동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알도의 발을 압박으로 멈추게 만든 후 그 찰나에 펀치를 적중시킨다는 것, 말로 설명하기야 쉽지만 최고급의 타격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할로웨이는 큰 펀치를 급하게 휘두르지 않고 팔을 쭉 뻗거나 아예 내리는 동작 등으로 알도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후 펀치와 킥을 섞어 괴롭히다가, 결국에는 기본적인 기술이지만 가장 빠르게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원투 스트레이트로 알도를 눕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할로웨이의 타격 레벨이 얼마나 높은 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죠.
할로웨이가 그저 크고 길기만 한 선수가 아니라, 든든한 지구력과 맷집도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할로웨이는 펀치나 킥 단발의 임팩트는 맥그리거나 알도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변화무쌍한 스탭을 계속 밟으며 끊임없이 상대방을 두들길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기에 후반으로 갈수록 더 강해집니다. 거기에 페더급에서는 사기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맥그리거의 핵주먹까지 견뎌냈을 정도로 싱싱한 맷집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군대로 따지면 병력이 많고 탄약이나 식량 보급도 원활한데다 기동력까지 좋은 셈이니 이런 큰 반란에 성공했던 거겠죠.
할로웨이가 레슬링을 섞지 않고 타격전으로 정면 승부를 벌인 점도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타격과 레슬링을 섞어 상대를 압박하는 건 종합격투기의 기본 전술이지만, 알도가 상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천부적인 타격센스 뿐만 아니라 그래플링에서 쓰이는 코어 힘과 탄력도 남다른 알도는 레슬러들을 만나면 태클을 방어하며 빈틈을 공략해 오히려 상대 힘을 빼며 주도권을 잡아나가는데 능하거든요. 그래서 과거 정찬성 선수가 그랬듯이, 큰 체격을 십분 활용해 용감하게 타격전을 걸었던 할로웨이가 알도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웠을 겁니다.
사족일 수 있겠지만 덧붙여본다면, 이번 경기를 해설하던 중 오버랩된 경기는 코너 맥그리거와 네이트 디아즈의 1차전이었습니다. 맥그리거가 초반 타격을 많이 적중시키며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그걸 꾸역꾸역 다 견뎌낸 디아즈가 좀비 복싱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며 반전되었고, 결국 전례 없이 큰 타격을 허용하며 맥그리거가 무너졌죠. 위에서 설명한 부분들이 참 많이 닮아있는 그 경기와 겹쳐서 하나 더 짚어볼 만 한 건 알도나 맥그리거 같은 타격 천재 타입들은 평소 움직임이나 거리 감각 등이 너무 좋기에 그 리듬이 무너졌을 때 최후의 방어수단이라 할 수 있는 커버링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코리안 슈퍼보이’ 최두호 선수도 컵 스완슨과의 대결에서 비슷한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맥그리거가 디아즈에게 그랬듯 알도도 할로웨이에게 훤히 드러난 안면을 맞고 쓰러졌죠. 커버링을 좀 올렸으면 하고 팬들은 아쉬워하겠지만, 사실 가드를 두텁게 하면 알도 특유의 유연한 움직임은 나오기 힘듭니다. 일반 사람들이 그렇듯 일류 격투가들도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질 순 없거든요. 스타일상 어쩔 수 없는 알도의 약점을 할로웨이가 잘 파고들었다고 봐야 하겠죠.
알도의 이번 패배는 맥그리거에게 당한 KO패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폭군으로 군림하며 쌓아온 무적 아우라도 이제 상당히 걷혔고, 젊고 강한 도전자들은 앞으로 더욱 거칠게 달려들 겁니다. 이후 알도가 폐위의 수모를 딛고 일어나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페더급을 호령하든, 기술의 한계를 절감하며 완전히 신계에서 내려오든 이제까지 그가 쌓아온 업적에 격투기 팬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존경을 보내며 새 챔피언 할로웨이가 경기 후 올린 글로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알도는 가난한 시절 끼니도 거르며 체육관에 와서 훈련을 했고, 페더급을 스스로 만들어 왕이 된 사람이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해 승리하고자 했고, 자신 뿐 만 아니라 동료와 팬들의 명예를 위해 지난 10년 간 그 자리를 지켰다.
금수저도 아닌 그가 이룩한 업적을 보라. 브라질 팬들은 여전히 그와 함께 해야 한다. 브라질의 특산품 아사이와 캐슈넛을 모두에게 바친다.(브라질 팬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미) 알도는 역대 최고의 챔피언이었고, 그의 전설은 나와 내 고향 하와이 사람들에게도 영원할 것이다. 조제 알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