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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역사는 김성근 감독을 통해서 무엇을 얘기하려 했나

조회수 2017. 5. 24. 09: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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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이현우였다. 왜 하필 그였을까. <수요미식회>의 어설픈(?) 먹방 전문가 아닌가. 하긴 그도 20년 전에는 아주 댄디한 목소리로 이별을 노래했다.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 (후략)

어제(23일) 대전 경기를 앞둔 SBS Sports 중계 방송팀의 선곡은 <헤어진 다음날>이었다. 서글픈 바이올린 선율을 배경으로 1분 남짓 짤막한 프롤로그 영상이 제공됐다. 그리고 이현우의 나즈막한 읊조림과 함께 이런 자막들이 TV 화면에 새겨졌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939일…때로는 화려했고, 때로는 처참하기도…끊임없는 이슈의 중심에 있으면서도…줄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준 감독…김성근 감독이 없는 한화는…’.

어제 대전 경기 중계방송을 앞두고 SBS Sports가 내보냈던 프롤로그 화면.

경기 전이었다. 홈 팀 덕아웃 풍경은 어딘지 허전했다. 고정 소품 하나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커다란 검은 색 철제 의자였다.

아마 지난 해 허리 디스크 수술 이후였던 것 같다. 그 때부터 그 의자는 늘 이글스의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대전은 물론이고 잠실로, 사직으로, 전국 어디든 지 빠짐 없이 따라다니던 필수 아이템이었다. 일찍이 어느 나라 덕아웃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육중한 사이즈의 그것은 자신의 주인과 함께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하필이면 배영수였다. 2년전 난감할 뻔한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은사가 떠나는 날이 그의 차례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 말랑말랑한 감상 따위가 스며들 틈이 있겠나. 하지만 그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수선한 분위기만큼이나 어지러운 피칭이었다. 8안타를 집중적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8점을 내주며 자신의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결국 4회를 넘기지 못하고 KO 됐다.

김성근 감독이 덕아웃에서 늘 앉던 커다란 의자, 그리고 배영수의 모습.

등장만큼이나 충격적인 퇴장이었다. 오후부터 시작된 혼란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한 매체의 보도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방에서 봇물 터지듯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아마 이글스 구단의 내부적인 의사 결정이 채 정리되기도 전이었던 것 같다. 초반은 치열한 진실 게임의 양상이었다. ‘사의 표명’ 그리고 ‘구단의 수용 여부’라는 키워드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단초가 된 사건의 전말도 알려졌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도 이어졌다. 한동안 갈팡질팡은 계속 됐다. 이윽고 해임이냐 사임이냐, 경질이냐 사퇴냐의 뜨뜻미지근한 형식 논쟁으로 발전됐다. 이쯤 되면 사태는 가닥을 잡은 것이다. 어쨌든 그 체제의 마감은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돼 버렸다.

하긴 뭐, 늘 그랬다. 매끄럽고, 깔끔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의 난 자리에는 언제나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혼란과 충격, 쓴맛을 잔뜩 남겼다.

경기 전 한화 덕아웃 감독석.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SBS Sports 중계 화면

김성근 방식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남긴 실적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글스 취임 첫 해 (2015년) 전반기를 빼면 승률 5할을 넘긴 적이 없다. 2년 남짓한 기간의 성적은 0.463(152승 3무 176패)에 불과했다. 엄청난 투자가 뒷받침 됐지만, 한번도 압도적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언제나 순위표 아래쪽은 그들 차지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추구하던 시스템에 대한 비난도 빗발쳤다. 구시대적인 낡은 방식, 불통의 문제는 여론으로부터 호된 질타의 대상이 됐다. 승리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비인간적인 혹사, 선수 교체, 경기에 대한 과도한 통제 등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거리가 됐다.

그렇게 야신의 신화는 무참히 깨져 버렸다.

하지만 이걸로 끝내서는 안된다. 여기서 멈춘다면 의미 없는 일이 돼 버린다. 2년간의 그 치열했던 논란과 논쟁을 벌이며 지불했던 엄청난 이성과 감정의 소모를 그냥 무용지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구라다>는 그렇게 믿는다. 김성근 방식이 성공인 지, 실패인 지. 또는 옳은 지, 그른 지. 그리고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지, 구태에 불과한 것인 지. 그래서 그의 퇴진이 잘 된 것인지, 잘못 된 것인지. 그걸 따지는 것은 본질이 될 수 없다.

2년전 이맘 때였다. <…구라다>가 올렸던 글의 일부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라고. 그러니 야신을 다시 무대로 불러올린 역사적 필연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다시 초대한 것은 팬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이 리그에서, 또는 그 팀에서 실현해낸 야구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납득했다면 굳이 ‘구태의연한 옛날 방식’이 다시 역사의 앞쪽에 등장할 이유는 없었다. 흙투성이가 돼 시커멓게 나뒹구는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주말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 목전에서 시전되는 질책성 펑고에 아낌없이 공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 옳은지, 어느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야구인 지는 논쟁과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다만 그로 인해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발전해 나가는 방편이 돼야 한다.'

좋다. 김성근의 시대는 이것으로 배웅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KBO 리그는 그 전에 설명해야 한다. 하필이면 왜 그의 방식이 무대의 전면에 올려졌는 지에 대한 역사적인 필연을 논증해야 한다.

그것은 ‘결핍’이었다. 좀 더 프로다운 경기력에 대한 엄중한 요구였다. 경쟁력과 품질에 대한 준엄한 촉구였다. KBO 리그와 거기 속한 야구인들은 그 역사의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에필로그

이현우는 <헤어진 다음날>의 도입 부분에 가녀린 바이올린의 선율을 삽입시켰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겨울’의 2악장 테마 부분을 샘플링한 것이다. 비발디는 그 2악장에 소네트(짧은 시) 형식으로 이런 코멘트를 덧붙였다.

'따뜻한 난로가에서

사람들이 포근하게 쉬는 사이에

만물은 비에 젖는다.'

그의 퇴장으로 이제 모두가 따뜻한 난로가에서 푸근한 저녁을 보내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밖은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이다. 비에 젖어 시들고, 얼어붙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때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김성근 감독이 없는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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