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U20 대표팀, 이번에는 분명 무언가 다르다.

조회수 2017. 5. 21.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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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FIFA U20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 v 기니 매치 리뷰
    

분명 무언가 다르다.

중심 자체가 앞을 향한다. 플레이에 망설임이 적고 과감하다. 그리고 자유롭다. 20세 이하 레벨이지만 엄연한 FIFA 월드컵이고 홈 팀이기에 응원 만큼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도 크다. 그런데 경기 중 선수들의 표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이 느껴진다.

내 또래가 경험한 U-20 FIFA 월드컵은 2003년 UAE 대회였다. 그때도 언론에서는 ‘역대 최강’, ‘4강 신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1승2패로 가까스로 진출한 16강 전에서 일본에게 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2000년대 들어 U-20 대표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은 2009년과 2013년에 기록한 8강 이였다. 당시 김보경, 윤석영, 김영권, 권창훈 등 좋은 선수들이 활약했지만 이번 U-20 대표팀은 분명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조별리그 1차전, 기니 전을 지켜보며 느낀 ‘그 무언가’를 과연 글로 정리 할 수 있을까?

 한국 v 기니 매치 스탯 (FIFA.COM)

# 시대가 변했다

‘스물’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2015년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처럼 스무살 때는 무서운게 없다. 나도 스무살 시절에는 언젠간 나카타 히데토시 같이 플레이 하게 될 줄 알았다. 분명 스무살은 겁 없는 나이다. 하지만 정작 과거의 U20 대표팀은 세계 무대를 겁냈다. 일부러 경기 전 필드 입장할 때 소리도 과하게 지르고, 눈도 부리부리하게 치켜떴다. 속된 말로 ‘머리 들이밀고 축구했다.’ 나중에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그런 행동을 하는 대부분의 원인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몸을 던져 상대의 슈팅을 막으며 피도 나고 눈물도 흐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정신력’ 나아가 ‘투혼’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한국 축구에 이런 플레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한국 축구의 기본이며 5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요소들이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장점이 된다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1999년 프랑스 PSG U-17팀에서 훈련 할 기회가 있었다. 그 해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출전한 말리 선수가 테스트를 왔는데 그 친구와 제법 친하게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98년 월드컵 이임생의 붕대 투혼 등을 예로 들며 한국 축구의 정신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내 말을 경청하던 그 친구가 씩 웃으며 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축구 잘하면 그렇게 몸 안 던져도 돼잖아?”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요즘 말로 ‘팩폭’이였기 때문이다. 2005년 네덜란드 U-20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 후배는 브라질을 상대한 조별리그 3차전 당시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고 했다. 무승부를 기록하면 16강 가능성이 있었지만 두 골을 실점하는 순간 추격할 의지는커녕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화의 가능성은 2007년 캐나다 U-20 월드컵 때 감지됐다. 88년,89년생, 이청용과 기성용이 출전했던 대회에서 U-20 대표팀은 잘 짜여진 조직력으로 경쟁력을 보였다. 2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선수들은 세계 무대임에도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을 해냈다. ‘세계 무대에 대한 겁’이 한 차례 깨지고 나니 갈수록 당당해졌다. 조직력, 단합력, 기동력이 주무기가 되어 2009년, 2011년, 2013년 세 개 대회 연속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팀 플레이를 강조 하다보니 개인의 장점을 조금 숨기는 경우가 있었다. 8강 이상도 가능했지만 한 끝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이번 2017년 U-20 대표팀은 팀도 보이지만 개인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앞서 열린 평가전은 물론 기니 전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다. 어린 시절 이미 세계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이기에 그들을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다.

상대를 적게 의식하는 순간, 포커스는 자신에게 향한다.‘상대가 어떻게 하느냐’ 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 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창의성, 책임감이 강해지고 끌려가는 것이 아닌 끌어가는 경기를 하게 된다.

나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97년, 98년생이 주축인 이번 U20 대표팀은 이런 특징의 축구를 하고 있다. 내 플레이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실수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니 전에서 터진 세 골 모두 한국 축구가 그렇게 원하던 ‘창의성’에서 나온 장면이다.

'난 놈' 신태용 감독 (FIFA.COM)

# 준비, 그리고 감독 신태용

기니 전에서 한국은 4-1-4-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이승모가 중원에서 균형을 잡았고 조영욱, 이승우, 백승호가 공격을 주도했다. 모든 대회 첫 경기의 초반은 늘 어렵다. 2년 전 U-17 대회 당시 맞대결 때 보다 기니의 피지컬은 더 발전한 듯 했다. 왼쪽 윙어 케이타의 개인 돌파는 위협적이였고 포바나-카네-수마 의 중앙 미드필드 조합은 전반 36분 이승우의 첫 골이 터지기 전 까지 한국의 중원 조합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정보

경기 전 신태용 감독은 기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때문에 언론에서도 기니를 ‘베일의 쌓인 팀’이라고 평했다. 현대 축구에서 경기 영상 분석은 매우 중요하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선수가 똘똘해야 한다. 영상 분석 내용보다 상대의 강점이 더 강한 경우도 있고 약점으로 지목한 곳이 생각보다 견고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기니의 윙어, 케이타의 돌파 능력은 예상보다 더 우수했다. 하지만 몇 차례 당한 이유현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고 정태욱, 이승모의 커버 플레이도 갈수록 좋아졌다.

 위협적이였던 케이타의 개인 능력, 그리고 한국 수비진의 평정심 (KBS 중계 화면)

U20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 중 이미 소속 팀에서 준주전급으로 출전하는 선수도 있지만 이 선수들은 이제 겨우 스무살이다. 한번 분위기 타면 끝없이 올라가지만 반대로 한번 무너지면 그 경기내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전반 중반까지 예상보다 강한 기니의 저항에 선수들이 흔들릴까봐 걱정됐다. 하지만 선수들은 스스로 문제를 진단했고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선제골 이후에 경기 리듬이 더 붙기 시작했고 후반전은 훨씬 더 좋았다. 공격 할 때 만 창의력이 필요한게 아니다. 수비 상황에서도 당연히 필요하다.

  코너킥 수비 배치 (KBS 중계 화면)

○ 세트피스

개막을 앞둔 평가전에서 지목된 한국 대표팀의 약점은 세트피스 였다. 세네갈 전을 포함하여 세트피스 상황에서 연속 실점했고 신태용 감독도 많은 고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트피스에 강한 기니를 상대하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보였고 특히 수비 상황에서 성과가 있었다. 세트피스 능력은 전염성이 있기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발전 할 수 있다.

오늘 한국은 가장 큰 약점인 코너킥을 8차례 허용했지만 큰 위기는 없었다. 세네갈 전 이후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용한 수비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 효과를 봤다. 이로써 연속된 세트피스 실점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냈다. 오늘 경기에서 대표팀이 얻는 또다른 중요한 성과다.

○ 감독

신태용 감독은 특별하다. 유쾌함 속에 치밀함이 숨어있다. 그리고 수 또한 높다.

이번 U20 대표팀은 재료를 메뉴에 맞춘 것이 아닌 메뉴를 재료에 맞추는 느낌이다. 여려 평가전에서 선 보인 것처럼 4-1-4-1, 4-2-3-1, 3-4-3 다양한 포메이션이 가능하다. 정해진 팀의 틀에 테트리스 블록처럼 선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다. 멀티 포메이션 능력은 이번 대회 한국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표팀의 장점이 될 것이다.

어느 레벨이나 대표팀에 소집되는 선수들은 상대적인 기량이 우수한 유닛들이다. 감독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 신태용 감독은 그 유닛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곳에 선수를 배치한다. 선수도 신이 나고 덩달아 경기력도 좋아진다. 축구팀에서 감독과 선수의 인간적인 친밀감과 유대감 물론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축구다. 물론 신태용 감독의 ‘형님 리더쉽’ 때문에 선수들이 감독을 더욱 잘 따르기도 하겠지만 결국 본질은 축구다.

이승우 골
 이승우 도움, 임민혁 골
백승호 골

# 이승우, 백승호, 바르셀로나

스타 플레이어의 숙명이지만 대회 개막을 앞두고 얼마나 부담감이 컸을까? 하지만 두 선수는 나란히 골을 기록했고 환상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두 선수에 대한 축구팬들의 바램은 명확하다.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하루 빨리 A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A대표팀에 뽑아햐 한다, 시기상조다 등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힌트는 바로 이번 대회에 숨어 있을 것이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백승호의 경기 체력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만 오늘 백승호는 스스로를 증명했다. 지난 겨울 바르셀로나 팀 훈련을 현지에서 지켜본 한 국내 지도자는 현지 분위기를 빌어 이승우 보다 오히려 백승호의 1군 데뷔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백승호는 하프라인 위 대부분 포지션을 소화하며 감독의 성향을 크게 타지 않을 스타일이다. 모두에게 호감을 주며 영리하고 축구 이해도 역시 훌륭하다. 무엇보다 대표팀 소집 이후 백승호의 폼은 조금씩 향상 되는 듯 하다. 아르헨티나 전, 잉글랜드 전, 나아가 토너먼트 단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이승우는 전반 36분 득점 하기 전까지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다. 평소보다 볼 터치가 둔탁했고 움직임 역시 좋지 않았다. 득점 장면에서도 운이 따랐다. 패스가 더 나은 선택이였지만 다소 무리한 슈팅이 상대 수비 발에 굴절되며 골로 연결됐다. 그리고 이 골로 이승우는 자유로워졌다.

전반 막판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조영욱의 골을 도왔지만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 확인 결과 무효 처리 됐다. 점점 경기력을 올리던 이승우는 후반 31분 임민혁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좁은 공간, 상대 수비의 범위 안에 위치한 상황에서 이승우는 그 짧은 순간에 수비의 다리 사이를 노렸다. “개인 성향이 강하다”, “체격이 너무 작다” 등 이승우에 대해선 호평만큼 악평도 많다. 하지만 우리들 중 이승우의 플레이를 직접 꾸준히 관찰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니 전에서도 이승우는 몇 차례 무리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전진 드리블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코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작지만 기술적이고 빠른 유닛이 파이널 서드에서 당돌하게 돌파한다. 한국 축구가 언제 이런 유닛을 보유한 적이 있던가? 적어도 이번 대회라도 이승우가 필드에서 맘 껏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어쩌면 진짜 판타지스타가 될 지도 모르니까.

# 개선점

○ 중앙 밀집 성향

평가전 때부터 공격 전개 시 첫 번째 패스의 선택, 공격 속도 조절 등이 개선점으로 지목됐다. 기니 전 공격 방향이 중앙에 집중되었는데 이 현상은 전반전에 특히 두드러졌다. 상대의 중앙 블록이 견고함에도 중앙으로 전진 패스를 투입하다보니 여러차례 인터셉트를 허용했고 역습에 의한 위기도 몇 차례 있었다.

중앙 지역으로 전진 패스가 실패되면 패서와 리시버 모두 자신감이 떨어지고 공수 밸런스 역시 악영향을 받는다. 중앙 지역으로 전진 패스를 많이 시도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잉글랜드를 상대할 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를 해설했는데, 아르헨티나 중원 조합은 기니보다 훨씬 강하다.

○ 반칙 후 재개 될 때

후반전 이승우가 부상으로 치료 받은 후, 경기가 재개 될 때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골이 플레이가 잠시 정지되었다가 다시 재개될 때 발생한다. 위험 지역이 아니더라도 반칙이 선언되면 주심의 휘슬과 상관없이 공에서 가장 가까운 선수는 그 상황에 관여되어야 한다. 상대가 빠르게 플레이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공 앞에서 적절하게 서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남미 팀들은 이런 상황을 영악하게 잘 활용한다.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는 항상 존재한다.

후반 한 차례 아찔했다.

# 비디오 판독 시스템

대회 첫날에만 두 차례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사용됐다.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에이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팔꿈치를 사용하여 퇴장 당했고 기니 전 조영욱의 골도 무효 처리 됐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은 다음 사항 때 사용한다.

1. 골

2. 페널티킥 판정

3. 직접 퇴장 판정

4. 제재 선수 확인

FIFA는 지난 해 12월 클럽 월드컵 이후 이번 대회에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 반대 측의 의견 중 한 가지는 시간이 지연되어 경기의 흐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클럽 월드컵에선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애매한 판정에 대해 선수들의 항의 시간보다 비디오 판독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짧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승패를 가를수 있는 중요한 판정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걸려있다. 나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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