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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UFC Express] 거대한 사나이들의 싸움

조회수 2017. 5. 1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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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헤비급 타이틀전 리뷰

전 세계 최강의 사나이를 가리는 UFC 헤비급 타이틀전이 끝났습니다만 팬들의 마음은 꽤 허무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한때 젊은 수사자 같은 포스를 자랑했던 전 챔피언 주니어 도스 산토스가 맥없이 KO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네요. 비록 경기 시간은 짧았지만, 격투기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거대한 사나이들의 싸움을 돌아보겠습니다.

경기 후 서로를 안아주는 미오치치와 도스 산토스

일단 전략에서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챔피언 미오치치였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주니어 도스 산토스는 복싱 선수가 UFC 옥타곤에서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펀치에 많이 의존하는 반면, 미오치치는 복싱도 좋고 레슬링도 잘합니다. 어차피 복싱으로 싸워야 하는 도스 산토스와 달리 챔피언은 상대를 주먹으로 때릴지, 다리를 잡고 넘어뜨릴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인 거죠.

2014년 말 펼쳐진 양 선수의 1차전에서는 미오치치가 복싱과 레슬링을 적극적으로 섞는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종합격투기 공격에서 레슬링 태클을 섞으면 대부분 장점이 많습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다리를 잡으려는 건지 얼굴을 때리려는 건지 헷갈릴 수 밖 에 없고, 그러다 보면 빈틈이 생길 확률이 높아지죠.

1차전에서 레슬링을 많이 활용했던 미오치치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태클을 하면 공격자의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겁니다. 체력이 좋은 몇몇 예외도 있긴 하나, 대부분의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태클에서 출발하는 레슬링 공방이 종합격투기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이라 입을 모읍니다. 미오치치도 1차전 초반 레슬링 태클과 펀치의 결합으로 재미를 보긴 했지만, 결국 중반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죠.

당시 미오치치는 주니어 도스 산토스를 두 번 제압한 케인 벨라스케즈의 전술을 좀 빌려왔었을 겁니다. 그때만 해도 도스 산토스와 주먹으로 치고받는 건 자살행위로 간주되었고, 벨라스케즈처럼 레슬링을 섞어 케이지로 몰아놓는 게 도스 산토스를 잡는 모범 답안이었죠. 그런데 벨라스케즈는 헤비급 선수로서 상식을 벗어난 지구력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반면 미오치치는 레슬러 출신이긴 하지만 벨라스케즈처럼 태클을 경기 당 수십 번 씩 시도하는 선수가 아니죠. 미오치치는 그 ‘무한 압박’ 전략이 벨라스케즈에게만 꼭 맞는 옷이라는 걸 비싼 값을 치르며 배운 셈입니다.

미오치치의 체력이 떨어지며 둘의 1차전은 엄청난 난타전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미오치치는 이번 2차전에서는 레슬링을 굳이 섞지 않고 타격으로 정면 승부를 벌였습니다. 원래 도스 산토스는 뻥 뚫린 공간에서는 날아다니는데, 케이지 쪽에 갇히면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미오치치는 케이지 중앙을 떡 하니 차지하고 도스 산토스를 계속 펜스 쪽으로 몰고 다녔는데, 벨라스케즈 스타일의 레슬링 압박은 빼고 순전히 풋워크와 펀치만 사용했죠.

도스 산토스를 계속 펜스에 가두려 했던 미오치치

물론 도스 산토스도 미오치치의 이런 압박에 최선을 다해 대항했습니다. 사이드 스탭을 계속 밟으며 미오치치의 공격 방향을 흔들어 놓는 동시에 로우킥으로 상대 다리를 묶으려 했죠. 미오치치가 경기 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도스 산토스의 킥은 꽤 효과가 있었는데, 이 킥은 허벅지를 노리는 일반 로우킥과 달리 종아리 쪽을 차는 킥입니다. 일반 로우킥보다 더 낮은 각도의 이 킥은 타격 지점이 거의 발목 쪽까지 내려가기에 킥하는 발을 상대방이 손을 내려 잡기가 어렵습니다. 거기다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맞으면 꽤 아픕니다. 아킬레스건 쪽을 감아 때리는 느낌이랄까요. 정통 킥복서들이나 낙무아이들은 그리 잘 차지 않는 킥이지만 꽤 효과적입니다. 전 라이트급 챔피언 벤 핸더슨이 주무기 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고, 헤비급에서는 과거 안토니오 실바가 마크 헌트를 상대할 때 썼었죠.

로우킥 전술을 들고 나왔던 도스 산토스

하지만 도스 산토스의 킥은 미오치치의 전진을 막기엔 충분하지 못했고, 싸움은 결국 복싱 공방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서 도스 산토스가 허무하게 KO당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복잡한 건 없었습니다. 미오치치가 복싱 거리를 잡고 선제공격으로든 카운터로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계속 걸어주며 압박했고, 도스 산토스는 결국 몇 차례 걸리며 무너졌습니다.

미오치치가 이번 경기에서 KO를 얻어내는 장면

양 선수가 5라운드 내내 치고받았던 1차전과는 너무도 다른 결과이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챔피언 미오치치가 너무 강해진 건지 도전자 도스 산토스가 내리막길인 건지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저는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미오치치는 도스 산토스와 첫 대결을 치른 이후 기량이 일취월장했습니다. 새로운 무기들을 이것저것 장착했기보다는 본인의 특기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은 느낌입니다. 결국 헤비급은 한 방 싸움이기 때문에, 화려한 기술이 얼마나 있느냐보다는 결국 파워 있는 단발 공격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집어넣는 지가 중요합니다. 미오치치는 주무기인 오른손 펀치를 꽂는 적절한 타이밍, 간결한 풋워크, 앞손을 통한 셋업 등을 계속 발전시켜 왔습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다가도, 펀칭 거리에 들어오면 갑자기 발이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상대 주먹을 피해내거나 본인이 때릴 수 있는 각도를 만들어냅니다. 부드러운 왼손 움직임은 꼭 세트로 같이 나오고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작은 동작들이 미오치치의 무서운 점입니다. 1차전 때 빛을 발했던 레프트 훅도 제대로 내보지 못한 채 도스 산토스가 펜스로 계속 몰린 건 챔피언의 돌주먹이 근거리에서의 이런 부드러운 상 하체 움직임과 합쳐져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자꾸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미오치치가 이 패턴으로 여러 강자들을 다 KO시켰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마이클 비스핑과 사이보그의 복싱 코치로 유명한 제이슨 파릴로는 ‘기술은 실제 시합에서 성공시켜야 비로소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고 얘기합니다. 파릴로는 마이클 비스핑과 루크 락홀드의 2차전에서 비스핑이 레프트 훅으로 KO승을 거둘 거라 예견했는데, 이는 놀랍게도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단순히 본인이 수 년 간 비스핑의 펀치를 미트로 받았다고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직전 경기인 앤더슨 실바 전에서 비스핑이 레프트 훅으로 실바에게 다운을 빼앗았거든요. 즉, 코치로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온 비스핑의 레프트 훅이 실바 전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보고, 실바와 마찬가지로 왼손잡이인 락홀드에게 그 기술로 이길 것임을 내다보았던 겁니다. 미오치치는 비슷한 리듬의 라이트 펀치로 안드레이 알롭스키, 파브리시오 베우둠, 알리스타 오브레임에 이어 주니어 도스 산토스까지 잡아냈습니다. 이러면 자신감이 붙어 펀치 타이밍이 더 과감하고 날카로워지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든 미오치치의 펀칭 거리 안에 들어오면 조바심을 낼 수 밖 에 없을 겁니다.

과거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펀치로 쓰러뜨리는 미오치치의 모습

허무하게 무너진 주니어 도스 산토스의 미래는 어떨까요? 아직 날개 없이 추락만 할 거라 보기엔 이릅니다. 케이지 가까이 몰렸을 때 허둥대는 약점이 여전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를 그렇게 가둬놓을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은 UFC 헤비급에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의 펀치는 무시무시하고, 이번 경기에서 선보인 킥을 더 적절히 섞는다면 대부분의 헤비급 선수들에겐 여전히 큰 위협이 될 겁니다.

하지만 챔피언을 다시 노리기엔 스피드가 느려지고 과감함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조지 포먼처럼 주먹 자체에 폭탄이 달려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한 방으로 계속 경쟁할 수 있지만, 마이크 타이슨처럼 파워 뿐 만 아니라 비상식적인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했던 선수들은 느려지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과거의 위용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이슨과 마찬가지로 도스 산토스도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갖고 있는 스타일인데, 다른 헤비급 선수들에 비해 우월했던 민첩성이 줄어드니 모든 게 풀리지 않고, 자연히 과감함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몸에 데미지도 많이 쌓인 데다 몸놀림도 느려지니 예전처럼 확 밀고 들어가 어퍼컷이나 오버핸드 라이트를 날리기가 쉽지 않겠죠.

경기 후 미오치치를 축하하는 도스 산토스

도스 산토스는 이제 챔피언 벨트로부터 멀리 밀려났고, 대권 도전에 가까이 있는 선수들이라면 7월의 UFC 213에서 치러지는 파브리시오 베우둠 VS 알리스타 오브레임 3차전의 승자와 케인 벨라스케즈를 들 수 있겠습니다. 베우둠과 오브레임은 이미 미오치치에게 모두 1라운드 KO로 물러났는데, 재대결이라면 도전자로 나섰다가 패배한 오브레임보다 챔피언으로 나섰다가 벨트를 뺏긴 베우둠 측을 스토리 라인상 UFC가 더 좋아할 것으로 보이네요. 케인 벨라스케즈는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데다 아직 미오치치와 붙은 적이 없어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옵션이지만, 연이은 부상으로 인한 수술 후 회복 중이라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어쨌든 챔피언 미오치치는 2차 방어에 성공하며 UFC 헤비급 역사상 타이틀 연속 방어 최다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UFC 헤비급 챔피언들 중 연속 3차 방어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과연 미오치치는 UFC 헤비급 역사상 최초의 ‘롱런 챔피언’으로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적어도 현재 분위기는 더없이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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