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쇼월터는 왜 김현수를 6번 타자로 내보냈을까

조회수 2017. 5. 16. 08: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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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 후. 라이언 플래허티의 타구가 내야 높이 떴다. 딱 봐도 그냥 이닝이 끝나는 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3루수 마이크 무스타커스가 버벅거리기 시작한다. 캔자스시티의 강렬한 태양이 그를 공격한 것 같다. 글러브로 하늘을 가리더니 우왕좌왕한다.

한참을 솟구친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에 떨어졌다. ‘아차’ 하는 무스타커스 옆으로 또다른 뭔가가 ‘휙~’ 하고 지나쳤다. 1루에 있던 오리올스 주자였다. 달리기도 그리 빨라 보이지 않던데. 어느 틈에 3루까지 내달린 것이다.

현지 중계진은 열심히 뛴 허슬 플레이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때는 그러려니…. 그런데 끝나고 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그냥 대충 하지. 뭐 하러 그렇게 열심이야.’

2회 플래허티의 뜬 공이 안타가 되는 사이 1루에서 3루까지 달린 김현수.       mlb.tv 화면

며칠 전이다. 트레이 맨시니가 맹타를 휘두른 날이었다. 기사에 달린 리플 중 가장 엄지를 많이 얻은 댓글이 이랬다. ‘쇼월터는 인종주의자다. 저렇게 잘 하는 백인이 있는데, 플래툰이라며 자꾸 이상한 동양인을 내보낸다.’ 물론 한글 사이트의 한글로 된 댓글이었다.

핑크색 유니폼 입고 선발 출장

이게 웬일인가. 출전 명단에 이름이 들어갔다. 무려 8게임만이다. 아마 핑크색 유니폼이 꽤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아무렴 어떤가. 배트부터 헬멧, 스타킹까지 모두 분홍색으로 깔맞춤했다.

그런데 묘한 점이 눈에 띈다. 순서가 맞나 싶다. 좌익수는 맞는데, 6번 타자다. 한 칸이 밀려 올라갔나? 

◇ 김현수 타순별 출장수

        2016년                  2017년

타순  게임    타율       타순  게임   타율       

①       2     .167         ①     2     .200

②      61    .283         ②     1     .000

③       2     .200         ③     0     .000

④       0     .000         ④     0     .000

⑤       0     .000         ⑤     0     .000

⑥       1     .333         ⑥     1     .000

⑦       3     .250         ⑦    10     .257

⑧       5     .308         ⑧     0     .000

⑨      19    .409          ⑨    2     .000

6번은 그가 별로 한 적이 없는 타순이다. 작년에는 주로 2번이었다. 그러더니 올 해는 7번이 대부분이었다. 전체 50타석 중 35번을 7번 타자 자리에서 수행했다. 비율로 따지면 70%나 된다.

6번 타순은 작년에 딱 한번, 그리고 올해도 마찬가지로 한 차례 밖에 없었다. 지난달 26일이었다. 전날 홈런을 쳤더니 ‘옜다’ 하고 한 자리를 승진시켜줬다. 그리고는 어제(15일)가 처음이었다.

무슨 뜻일까. 앞으로 한 칸 올라갔으니 좋은 일인가?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맥락이 안 맞는다. 출전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데, 타순은 반대로 앞으로 간다니. 납득이 안된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오리올스의 계속된 1점차 패배

오리올스는 한동안 잘 나갔다. 7할대 승률을 넘보며 지구 1위를 달렸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목요일(11일) 워싱턴전이 발단이었다. 6-2로 앞서던 경기를 뒤집혔다. 잭 브리튼이 빠진 불펜이 와르르 무너졌다. 8회 2점, 9회 3점을 주고 6-7로 역전패한 것이다. 그리고 만난 것이 캔자스시티였다. 중부지구 최하위라고 만만하게 봤다가 연거푸 코가 깨졌다. 금요일 비가 와서 하루 쉬고, 토요일, 일요일 내리 털렸다. 특히 3연패가 모두 1점차 패배였으니 얼마나 속이 쓰렸겠나.

쇼월터는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칼을 갈았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처럼 밤새 배팅 오더를 수십장 썼다가 찢기를 반복했을 지 모른다.

그리고 완성시킨 것이 어제(15일) 그 타순이다. 

① 세스 스미스 (우)             좌

② 조나단 스쿱 (2)              우

③ 매니 마차도 (3)              우

④ 크리스 데이비스 (1)      좌

⑤ 마크 트럼보 (지)            우

⑥ 김현수 (좌)                     좌 

⑦ 조이 리카드 (중)            우

⑧ 라이언 플래허티 (유)    좌

⑨ 케일럽 조셉 (포)            우 

이날 로열스의 선발 투수는 크리스 영이었다. 키 큰 오른손 잡이 영을 맞아 원정 팀은 좌타자 4명을 스타팅 오더에 포함시켰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좌우의 배열이다. 쇼월터는 하위 타선에 우타자와 좌타자를 지그재그로 배치했다. 이건 철저하게 경기 후반을 대비한 구상이다. 상대가 불펜을 운용하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좌타자가 연달아 있으면 좌투수 넣는 타이밍을 잡기 편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변화를 예고하는 뜻이기도 하다. 즉 상대 불펜 투수의 운용에 따라 적극적인 대타 작전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상기하시라. 오리올스는 3연패 중이다. 그것도 모두 1점차 패배였다.

◇ 어제 경기전까지 3연패

볼티모어 6-7 워싱턴

볼티모어 2-3 캔자스시티

볼티모어 3-4 캔자스시티

 

내용이 모두 좋았던 세 번의 타석

6번 타자는 이날 세 번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용이 모두 좋았다. 첫번째는 크리스 영의 패스트 볼을 공략했다. 땅볼이었지만 빠르게 투수를 통과하는 깨끗한 중전안타였다. 두번째 타구는 더 좋았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강력한 라인드라이브를 발사시켰다. 타구 속도가 무려 97마일이나 됐다. 그런데 하필이면 중견수 정면이었다.

세번째는 좌완 맷 스트라움을 상대했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까다로운 유인구를 잘 참아냈다. 볼넷으로 2사 1,2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다음 타자 리카드가 좌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이닝 종료.)

3타석 2타수 1안타 1볼넷. 멀티 출루에 타구의 질도 모두 좋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결국 9회까지 뛰지는 못했다.

이 게임은 중반을 넘어서며 또다시 1~2점 승부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5-8로 뒤지던 원정 팀이 7회 들어 치열한 추격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은 곧 이날의 승부처가 됐다. 상대는 불펜을 쏟아부으며 발빠른 투수 교체로 공격의 맥을 끊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 내내 상대를 질식시켰던 작전이다.

여기부터 쇼월터가 준비한 게임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배팅 오더를 짤 때부터 염두에 둔 대목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저격수를 배치했다. 그는 매복된 위치에서 안전장치를 풀고, 조준기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홈 팀의 불펜을 저격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쇼월터의 게임 플랜에서 제외된 김현수

7회 무사 1, 2루의 기회를 잡자 홈 팀은 좌투수 마이크 마이너를 마운드에 올렸다. ④와 ⑥(크리스 데이비스와 김현수) 두 좌타자를 잡기 위해서다. 마이너는 전날도 오리올스의 2이닝을 지웠던 투수다.

그러나 이 계획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④에게 우익수 앞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스코어 6-8. 오히려 우타자인 마크 트럼보를 내야 플라이로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1사 1, 2루의 기회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부터 쇼월터의 노림수가 작동했다. 타임을 걸고 웨이팅 서클에서 준비하던 원래 6번 타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구심에게 대타 사인을 냈다. 준비한 저격수인 우타자 트레이 맨시니였다. 홈 팀은 즉각 대응했다. 좌투수 마이너를 강판시켰다. 대신 우투수 피터 모일란을 올렸다.

쇼월터가 이걸 예상 못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본래 타순인 김현수가 좌투수 마이너를 상대하는 것보다, 맨시니가 모일란을 상대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다는 계산까지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쇼월터의 생각은 적중했다. 맨시니는 여기서 초구 슬라이더(79마일)를 받아쳐 좌전 안타를 때려냈다. 덕분에 오리올스는 1사 만루로 기회를 이어갔다. (하지만 1득점에 그쳐, 또다시 1점차로 패했다.)

문제는 이 긴박한 승부처에서 원래 6번 타자가 전력에서 소외됐다는 점이다. 2차례의 좋은 타구를 날렸고, 좌투수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는 데도 말이다.

선발 출전해도 9이닝 기회는 줄어들듯 

쇼월터는 현지 매체 MASN과 인터뷰에서 포지션 중복이 고민거리임을 밝혔다. “모든 선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만약 2주 동안 그냥 앉아만 있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가급적 모든 선수들이 경기에 참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힘든 일이다. 변명같지만 어쩔 수 없다.”

맨시니가 워낙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파워와 수비력에서 흠 잡을 데가 없다. 게다가 더 젊다. 팀에게는 훨씬 투자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때문에 그나마 플래툰 시스템마저 흐지부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전 기회가 공평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다 돌아오는 선발 출전 기회마저 풀 이닝을 뛴다는 보장이 없게 됐다. 마치 어제 경기처럼 후반에 대타나 대수비, 대주자로 교체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앞으로 타석수는 점점 더 줄어들 게 될 지 모른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도 이겨냈던 타자 아닌가.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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