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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야구 싫어하는 대통령

조회수 2017. 5. 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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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지독한 연설광이었다. 잘 하기도 했지만, 좋아하기도 했다는 뜻이다. 주제는 상관 없다. ‘꺼리(거리)’만 생기면 즉석에서 달변을 쏟아냈다. 일단 시작하면 3~4시간은 너끈했다. 그런 그의 연설 중에서 유명한 말 하나가 있었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멸망할 때까지. (I will not die until America is destroyed.)”

그는 결국 작년 11월 사망했다. 하지만 인생 전체에 걸쳐 그를 지탱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철저한 반미(反美)였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피델에 대한 미국의 암살 시도는 무려 638번이나 됐다.

미국에 대한 증오심은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관련된 모든 것이 금지됐다.

상징적인 것이 드레스 코드다. 말년에 그가 애용한 옷은 수수한 트레이닝 복이었다. 공식석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교황과 만날 때도 트레이닝 복 차림이었다. 물론 한결같이 유럽 쪽 상품이었다. 아디*스, 푸*, 필* 등등. 미제 나이*는 언감생심, 명함도 못 내밀었다. 최종 승자는 독일제 아디*스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치를 떨만큼 증오했지만, 유일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사랑한 ‘made in America’가 있었다. 야구였다. 베이스볼(beisbol)이라는 스페인어가 있지만, 그들은 야구를 ‘펠로타(pelota)’로 부른다. 공(ball)이라는 뜻이다. 미국 사람이 볼 게임(ball gameㆍ야구), 볼 파크(ball parkㆍ야구장)로 일반화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50년대 후반. 카스트로 반군은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 처절한 내전을 벌였다. 그 때도 살벌한 전투가 잠시 중단되던 때가 있었다. 월드시리즈 무렵이었다. 카스트로 혁명군은 라디오 중계를 듣기 위해 모든 작전을 멈췄다.

반정부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피델과 그의 동지들은 야구 클럽을 만들었다. 팀 이름은 ‘수염 달린 사내들(Barbudos)’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지들이 만든 야구팀 '수염 달린 사내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교 시절 야구 선수였다. 아쉽게도 실력은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잘했다면 계속 그 길로 나갔을 텐데, 그럼 아마 세상은 덜 시끄러웠을 것이다.

올해 MLB 개막전에서는 오래된 ‘전통’ 하나가 생략됐다. 바로 대통령의 시구였다. 홈 팀 워싱턴 내셔널스는 관례에 따라 백악관에 편지 하나를 보냈다. 취임 후 처음 열리는 개막전에 첫번째 피칭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요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다른 일정과 충돌이 생겨서’였다.

비슷한 무렵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단골 시구 무대인 (아마도 백악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뜬금없는, 그러나 흥미로운 코멘트가 나왔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할 계획이 없다.”

트럼프와 MLB의 서먹함을 두고는 뒷말이 많다. 특히 그의 반이민 정책에 따른 영향 아니냐는 추측을 빼놓을 수 없다.

메이저리그는 유난히 외국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17년 개막 시점을 기준으로 전체 등록선수의 28%가 미국인이 아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같은 중남미 출신들이다. 반이민 정책의 표적이 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백악관도 시구라는 이벤트가 정책의 코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계산을 했을 지 모른다.

작년 11월.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던 날이었다. 다저스 투수 브랜든 매카시가 밤 늦게 SNS로 무척 인상적인 멘션을 하나 올렸다. “(선거 결과가) 내게는 아무 영향 없다. 나는 부자다. 백인이고,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당분간 평화롭게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트럼프가 2004년 뉴욕 양키스 경기에서 시구하는 장면. USA투데이 캡처

새 대통령은 야구 명문고(경남고) 출신이다. 스스로를 ‘동네 야구 4번 타자’로 칭한다.

운동권이던 대학 때 계엄령 위반으로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됐다. 애인이던 김정숙 여사가 면회를 갔다. 경남고 우승 소식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줬더니, 와중에도 환하게 웃더라고 회고했다.

대학 시절에는 동아리를 만들었고, 사법 연수원 시절에도 활발하게 야구팀으로 활동했다.

고인이 된 최동원 투수는 1988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후배들에게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자”고 외쳤다. 당시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 힘겨운 싸움 뒤에는 무명의 인권 변호사 한 명이 있었다. 법률 자문으로 힘을 보태는 역할이었다. 다름 아닌 고인의 경남고 선배였던 ‘동네야구 4번 타자’였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선거가 끝났다. 야구계도 마찬가지로 온통 화제가 그쪽이다. 어느 때보다 많은 야구인들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투표 다음날 대전 구장도 그랬다. 미디어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한 마디를 청했다.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 야구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 야신 뿐이겠나. 야구계의 상당수가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물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야구와 정치를 연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정서일 지 모른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그렇다. KBO리그의 탄생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야구인들의 기대감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야구 좋아하는 대통령이 됐으니 야구계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말 속에는 거북함이 존재한다. ‘그럼 야구 싫어하는 대통령이 되면 야구계가 걱정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냐’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는…?’ ‘골프는…?’ 같은 의문문도 꼬리를 문다.

‘동네야구’ 출신 대통령의 탄생은 분명히 야구인과 팬들에게 환영할 일이다. 거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다만 그 ‘환영’의 영역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저 분도 우리처럼 야구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정치적인 필요나 호/불호가 현실과 결합한 결과 많이, 그리고 너무나 불편하게 경험했다. 그걸 되풀이 하는 건 결코 역사의 가르침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변화를 탄생시킨 시대 정신에 대한 거역일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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