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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경의 포토카툰] 운동화엔 태극기 가슴엔 일장기.. 빅버드에 다시 선 정성룡

조회수 2017. 4. 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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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G조 1위를 달리면서 K리그 팀들 중 16강 진출 확률이 가장 높았던 수원이 25일 홈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 0-1로 패하며 조2위로 내려앉았다. 승리가 절실했던 가와사키는 목적을 달성했고, 최소한 무승부가 필요했던 수원은 뼈아픈 패배를 맞았다. 

이날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수원에게 아픔을 준 상대팀의 중심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2015년까지 수원의 골문을 지킨 수문장 정성룡이었다.

경기 시작 전 수원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성룡 골키퍼 

가와사키로 이적하고 1년 5개월 만에 빅버드를 찾은 정성룡은 이날 가와사키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2011년부터 다섯 시즌 동안 수원 골문을 지켰던 정성룡은 몸에 익은 편안함 덕분인지 너무나 침착하게 경기에 임했다. 경기 내내 몸을 스트레칭하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수원의 공격 상황을 대비했고, 수비라인을 점검하며 소리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수원이 그리 결정적인 찬스를 잡지 못했던 경기지만, 그나마 만든 상황도 대부분 최종 수비수 정성룡의 손에 막혔다.

후반 48분 구자룡의 마지막 슈팅마저 막히자 수원 서포터석에서는 "아~ 성룡이 형~"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거참 얄미운 형이었다. 그러나 적으로 만난 성룡이 형도 사실 친정팀 수원에 대한 마음이 애틋했다. 후반전 가와사키의 득점이 터졌을 때, 그리고 1-0으로 가와사키의 승리가 확정됐을 때 정성룡은 같은 행동을 보였다. 땅을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원래 하늘보다 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로 돌려 말했지만 평소 정성룡의 행동과 비교하면 다분히 의도가 섞인 행동이었다. 

경기종료 순간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는 정성룡 

동료들의 축하에도 정성룡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한 것은 옛 수원 동료들을 만났을 때 였다. 한숨 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수원 선수들에게 정성룡은 그들 만큼이나 무거운 표정으로 조용히 악수를 건넸다. 예를 갖춘 것이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 것은 정성룡의 미안한 마음을 알아 챈 조원희와 서정진의 과격한 장난(?)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인 정성룡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수원 서포터석으로 향했다.

수원 서포터석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전하는 정성룡

90도 각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전하는 정성룡에게 수원 서포터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경기종료 후 정성룡은 "팀은 가와사키지만 진짜 고향에 온 느낌이다. 고향에 온 만큼 개인적으로 그렇고 수원 팬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스스럼 없이 수원을 고향이라 표현했다. 수원은 그만큼 그에게 특별한 팀이다. 프로데뷔 이후 가장 오랜기간 몸 담았고,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기록했다. 그리고 힘들 때 든든한 우산이 된 고마운 팀이기도 하다.

정성룡의 축구인생은 2014년 6월 브라질월드컵 이후로 많이 달라졌다. K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상대 서포터석에서 "퐈이야~"라는 외침이 들렸고, 그와 관련된 기사는 조롱하는 댓글이 늘 1순위를 차지했다.

모두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 소속팀 수원이었다. 그의 말처럼 몸은 가와사키에서 뛰고 있지만 수원을 생각하는 마음 만큼은 한결같았던 정성룡이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축구화에 선명하게 그려진 태극기였다.

2017년4월25일, 수원과의 ACL 조별예선에서 촬영한 정성룡의 축구화
2014년7월12일, 슈퍼매치에서 촬영한 정성룡의 축구화

축구화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선수는 대부분 해외파 또는 대표팀에 자주 발탁되는 국내선수다. 일본에서 뛰고 있는 그에게 태극기는 수원에 있을 때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대표팀 발탁을 향한 강한 의지일 수도, 불타는 애국심일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됐든 가슴에 일장기를 단 정성룡에게 발견한 태극기는 왠지모를 감동이 전해졌다. 그는 한국 축구의 자랑스러운 골키퍼다.


#또다시 등장한 전범기, 끝내 사과 받아낸 수원 서포터스

한편 이날 경기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가와사키 서포터석에서 전범기가 등장한 것이다. 일본 팀과의 경기에서 벌써 몇 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한 제제 요청을 하고, 경호를 강화하는 것 외에 딱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수원 서포터스의 행동은 속에 꽉 막힌 무언가를 뚫어주듯 시원함을 전했다.

전범기를 확인한 수원 서포터스는 경기종료 시점에 맞춰 가와사키 서포터석으로 이동했고, 사과를 요청했다. 경찰과 양 팀 구단 관계자가 등장했지만 수원 서포터스는 강경했다. 수원 서포터스 대표가 직접 가와사키 원정석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인원은 원정석 출입구를 막아섰다. 그리고 끝내 그들의 사과를 받아냈다.

경기종료 후 수원 서포터스의 등장에 당황한 가와사키 팬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고 있다.  
경찰, 경호원, 구단 관계자가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수원 서포터스 대표가 가와사키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 
의견을 조율하는듯 가와사키의 남은 팬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경기가 종료된지 약 40분이 지나서야 가와사키 서포터스의 대표와 수원 서포터스 대표의 만남이 이뤄졌다. 다음은 가와사키 서포터스 대표와 수원 서포터스 대표의 대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가와사키 구단 관계자는 취재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고, 더 이상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수원 대표: 우리가 일장기를 불태웠으면 어땠을 것 같나.

가와사키 대표: 제재가 되지 않아 너무 죄송하게 생각한다.

수원 대표: 아시아에서 계속 만나게 될 텐데 이런 이미지를 보인 것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반성하라. 정식으로 사과하라.

가와사키 대표: 정말 죄송하다 .

수원 대표: 다시는 이런 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와사키: 우리는 항상 축구를 통해 한국과의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미안하다. 축구의 힘을 빌려 일본과 한국이 더 발전되기를 바란다.

수원 대표: 우리 역시 원하는 바다.


가와사키 서포터스 대표는 서포터스 전체가 아닌 개인이 한 행동이며 전범기가 펼쳐진 것을 몰랐다며 거듭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대화가 순조롭게 정리되자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 하자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수원 서포터스 대표가 거절하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수원 서포터스 대표가 원정 출입구 앞에서 대기중이던 수원 팬들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잘못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벌어졌다. 같은 장면을 축구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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