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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황재균과 추신수, 너무나도 기울어진 운동장

조회수 2017. 3. 29. 09: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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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초였다. 스코어는 3-2. 앞선 팀의 선두 타자가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펜스 근처까지 간 홈런성이었다. 2루까지 서서 들어간 그는 아쉬움이 남는듯 했다. 득점에 대한 욕심은 제어되지 않았다. 풀 카운트가 되자 도박을 걸었다. 3루로 기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투구는 마침 몸쪽이었다. 포수가 던지기 좋은 코스다. 쏜살같이 3루로 쐈다. 송구는 너무도 정확했다. 오히려 베이스-인 하던 3루수가 조금 늦었다. 넘어지면서 잡았지만, 태그 동작도 필요없었다. 글러브는 자연스레 슬라이딩 하는 주자와 겹쳤다. 심판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서릿발 같은 아웃 판정이었다.

잠시 저항이 있었다. 주자는 3루심을 쳐다보며 애타는 표정이었다. 손을 들어 뭔가를 따지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금새 깨달았다. 무릎을 꿇은 채 베이스를 잡고 아쉬움을 달랬다.

(볼넷으로) 가만히 있으면 무사 1, 2루였다. 그게 1사 1루가 됐다. 당연히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후유증은 현실이 됐다. 곧이은 9회 말 수비에서 2점을 잃었다. 그의 팀은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3루 도루에 실패한 뒤 아쉬워 하는 황재균.                                            mlb.tv 화면

27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 장면이었다. 3루에서 아웃된 루키는 한국에서 온 듣보잡 초청선수였다.

물론 시범 경기라 다행이었다. 만약 시즌 중이었다면? 두고두고 입에 오를 일이다. 무리한 도루 시도가 역전패의 원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다. ‘야알못’처럼 괜한 욕심 부렸다고 핀잔과 질타가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잘 안다. 그가 왜 그랬는지. 뭣 때문에 그렇게 무리수를 자행했는지.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한다’는, 너무나 절실한 마음이 그런 플레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느긋한 베테랑 ‘시범경기? 개막에만 맞추면…’ 

어제(28일)였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서 콜로라도전을 펼쳤다. 홈 팀의 3번은 지명타자가 들어갔다. 그는 삼진 2개에 1루수 앞 땅볼로 3타수 무안타였다. 그리고는 7회말 네번째 타석을 앞두고 대타와 교체됐다. 최근 4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하고 있다. 시범 경기 타율은 .171(41타수 7안타)까지 떨어졌다.

그의 연봉은 자그만치 2천만 달러다. 그런데도 최근 몇년째 부진에 주위의 눈길이 곱지 않다. 주류 매체들의 시각은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내구성과 수비 문제를 지적한다. 최근 3년간 수비공헌지수(Defensive Runs Saved)가 ‘-28’이었다는 점도 논란거리였다. 미디어들은 ‘지명타자가 어울릴 것 같다’며 점잖게 지적했다. 말이 그렇지, 우익수를 맡기기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스타답게 꿇리는 법은 없다. “난 월드시리즈에 가기 위해 텍사스에 왔다. 150경기를 지명타자로 뛰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우익수에 대한 여전한 자신감이다. 물론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난 텍사스 팬들과 구단 모두에게 빚을 졌다. 갚으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범경기 부진에 대해서도 별로 괘념치 않는다. 너무나 여유롭기까지 하다.

한 국내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범경기 성적은 아예 신경쓰지 않는다. 잘 맞은 타구도 많았는데, 잡혔을 뿐이다. 타율은 (정규)시즌이 끝났을 때 신경쓰면 된다. 앞으로 10타석 정도 더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다.” 한마디로 개막에만 맞추면 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거물급다운 느긋함도 잃지 않는다. “같은 캠프지만 선수들마다 의미가 다르다. 나도 초청선수로 캠프에 참가했을 때는 한 타석 한 타석이 중요했다. 죽어라 열심히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나 벨트레 같은 베테랑 선수들은 시즌을 바라보며 준비한다.” 

수많은 칭찬 속에서도 결과는 AAA? 

어처구니 없는 도루에 실패한 ‘야알못’은 다음날(28일) 펄펄 날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벤치였다. 4회가 돼서야 이름이 불렸다. 그러자 득달같이 달려나가 2점짜리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5호째였다. 8-0. 김이 빠진 스코어였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막판까지 불꽃을 활활 태우리라. 8회 1사 만루서는 2타점짜리 적시타를 보탰다. 혼자서 무려 4타점이다.

그의 3월은 너무나 찬란하다. 더할 나위 없는 스프링캠프다. 타율, 홈런, 타점….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데 없다. 모두 팀내 랭킹을 점령했다. 그뿐인가. 가방 속에 글러브만 3개다. 3루수, 좌익수, 1루수까지 숨 쉴 틈 없는 동분서주다.

덕분에 가장 인상적인 루키에게 준다는 상(바니 뉴전트 어워드)도 받았다. 동료들, 코치들, 감독의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하다못해 취재하는 미국 기자들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소리 많이 들어본 게 언제인가 싶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앞에는 너무도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잘하고, 열심히 하고, 칭찬 많이 받았는데도 당장 달라지는 게 없다. 오히려 반대다.

며칠 전부터 몇몇 매체들이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아마도 구단은 그를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도록 설득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본인도 옵트 아웃(팀을 나가는 권리)을 행사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는 관측이었다.

아마 내부 정리가 끝난 것 같다. 급기야 바비 에번스 단장의 코멘트도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 적응을 거의 완료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재다능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비적인 측면에서 확신이 필요하다. 3루에는 많은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에서 그를 필요로 할 수 있다. 투수들의 구속이나 수비 타구 등 메이저리그 스피드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적응을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계약조건과 리그 실적만 남더라도…

물론 추신수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폄하는 공정하지 않다. 그의 길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쩌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걸 이겨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 거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안타까움은 언제나 현재 시제에만, 그것도 비교급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둘의 처지가 유독 대비되는 지 모른다.

한국에서 여러 제안을 뿌리쳤다. 당장의 현찰을 따지면 커다란 손해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꿈과 도전이라는 달달한 낭만을 택했다.

낯 설고, 물 설고, 모든 것이 생소하다. 전혀 다른 시스템과 문화 속에 벌거숭이로 노출됐다. 모처럼 친해진 동료가 어느 날부터 안 보인다. 라커룸 옆자리가 깨끗이 청소되는 건 다반사다. 확연한 ‘을’이다. 그런 처지로 살벌한 서바이벌의 현장을 겪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뛰어난 실적 덕분이다. 하지만 그가 했던 모든 것이 무시될 지 모른다. 결국은 계약 조건과 그동안 축적된 리그에서의 실적만이 판단 기준일 지 모른다.

현지의 관측은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내려간다고 해도 빠른 시간 내에 콜업될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보장하겠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일 것이다. 너무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래도 내려갈 수는 없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가 찾던 꿈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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