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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UFC express] 쇼군, 패배에도 포기하지 않는 베테랑

조회수 2017. 3. 15. 18: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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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UFC 대회를 해설할 때면 가끔 예전에 프라이드 대회를 해설하던 게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은 ‘그때는 몰랐는데, 토너먼트 안에 용케도 그 거물들을 다 집어넣었었구나’는 겁니다. 2005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에는 최강자 반델레이 실바를 필두로 히카르도 아로나, 비토 벨포트, 알리스타 오브레임, 이고르 보브찬친, 댄 핸더슨, 마우리시오 쇼군, 퀸튼 잭슨, 사쿠라바 카즈시 등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지금 나열해 봐도 어마어마하네요.

2005년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 개막전 모습입니다. 스타들이 다 모여 있네요.

그 화려했던 2005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현재까지 UFC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마우리시오 쇼군이 지난 일요일 브라질에서 개최된 UFN 106 대회에 출전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쇼군의 승리를 좀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5년 국내에서 팬미팅까지 개최되었을 정도로 대한민국 격투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마우리시오 쇼군은 프라이드 시절부터 늘 화끈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로 유명했습니다. 프라이드에서는 그라운드 상태의 상대 선수를 발로 차거나, (사커킥) 밟는 (스탬핑) 공격이 허용되었는데, 쇼군은 이 중 스탬핑 기술에 특히 능해 ‘스탬핑 대장군’이라 불리기도 했었죠. 프라이드의 심판이었던 노구치 다이스케는 레프리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쇼군과 반델레이 실바 등이 소속되었던 브라질의 슈트박스 아카데미 선수들이었고, 그중에서 쇼군과 가네하라 마사히로의 경기가 가장 위험했던 경기로 기억에 남는다고 꼽기도 했습니다.

노구치 심판이 언급한 가네하라 전에서 사커킥을 날리는 쇼군의 모습

프라이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UFC로 넘어온 쇼군은 료토 마치다를 KO시키며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지만, 괴물 신예 존 존스에게 곧바로 무너지며 타이틀 방어에는 실패했습니다. 그 후 고질적인 부상에 승패도 계속 반복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커리어를 쌓아오다 이번 지안 빌란테 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UFC 무대에서는 개인 통산 최초로 3연승 행진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쇼군은 마치 복서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대부분의 공격을 펀치로 풀어나갔습니다. 펀치력이야 뭐 프라이드 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었지만, 잽의 활용이나 라이트 카운터 등 기술적인 부분을 더욱 가다듬은 게 눈에 띄었습니다. 쇼군은 한때 매니 파키아오, 마이크 타이슨 등의 복싱 코치로 유명한 프레디 로치와도 함께 훈련을 했었고, 몇 년 전부터는 슈트박스 아카데미 시절부터 본인을 가르쳤던 하파엘 콜데이로 코치와 다시 뭉쳐 타격을 가다듬어 왔습니다.

프레디 로치와 복싱 훈련을 하던 쇼군의 모습. 당시 로치는 쇼군이 처음에는 여자애들처럼 펀치를 날렸지만, 훈련 일 주일 만에 완전히 수준이 다른 강력한 펀치를 날리게 되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쇼군의 멋진 승리야 반갑긴 했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복서같은 쇼군의 모습은 펀치를 더 강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제 펀치 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거든요.

프라이드 시절 쇼군은 괴물들이 모여 있던 슈트박스 아카데미 내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체력을 바탕으로 펀치, 킥, 클린치 니킥, 테익다운, 파운딩, 스탬핑 등을 섞어 상대를 전방위로 몰아붙였던 선수였습니다. 공방 중 본인이 하위 포지션으로 가면 하프가드 플레이를 통해 스윕이나 탈출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내고 서브미션까지 노릴 정도로 주짓수도 뛰어났었죠.

하지만 쇼군의 다양했던 기술들은 이제 대부분 구식 무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쇼군이 즐겨 쓰던 테익다운은 난전 중 클린치가 되었을 때 상대방을 싸잡고 덧걸이를 거는 건데, 이 기술은 레슬링이 강한 선수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잘 통하지 않습니다. 상대방 중심을 크게 흔들거나 찌그러뜨리지 않고 다리를 걸며 상대에게 내 몸을 얹으며 들어가기에 상대가 레슬링이 강하면 오히려 크게 되치기를 당합니다. 요즘 UFC 정상급 선수들은 자유형과 그레코로만 레슬링 양쪽에 모두 강한데다 케이지에서 나오는 독특한 레슬링 싸움도 다 잘 구사하기 때문에 이런 쇼군식 덧걸이는 앞으로도 힘들 겁니다.

덧걸이를 걸다 차엘 소넨에게 되치기를 당하는 쇼군

프라이드에서 슈트박스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기술들 중 하나였던 무에타이 넥클린치 상태에서의 니킥도 이제 쇼군이 구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경기 장소의 변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라이드 선수들이 싸웠던 사각 링은 넥클린치를 잡았을 때 상대 선수가 밀고 들어와서 구석에 몰려도, 허리만 깊게 싸잡히지 않으면 뒤로 발을 쭉 빼서 짚어 지지대를 만들 공간이 많습니다. 구석에 몰려도 어차피 로프 사이 사이나 밑이 다 뚫려 있으니까요.

쇼군의 팀 선배 반델레이 실바가 구사하던 무한 니킥. 이런 장면을 UFC에서 똑같이 보긴 참 힘들죠.

하지만 철창으로 만들어진 UFC 옥타곤은 그런 식으로 구석에 몰리면 뒤가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엉덩이와 다리를 뒤로 빼서 니킥을 날릴 자세를 잡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허리나 다리를 싸잡혀 테익다운을 당할 위험이 늘어나죠. 거기다 UFC의 젊은 선수들은 체격도 더 커졌고 레슬링도 강해져서 그렇게 목을 잡고 컨트롤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슈트박스 스타일 선수들에겐 설상가상이죠. 그래서 쇼군이나 반델레이 실바가 UFC에서 예전처럼 시원시원한 니킥을 보여주기 힘든 거고, 그 동료들 중 UFC에서 니킥을 제일 잘 활용했던 앤더슨 실바도 최근 경기들을 보면 확실히 힘들어합니다.


그렇다면 그라운드는 어떨까요?

쇼군이 자랑하던 하프가드 게임은 료토 마치다에게까지만 통했고, 신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존 존스에게 무참히 박살이 났습니다. 쇼군이 구사하는 하프가드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상대 배꼽 쪽으로 머리를 박고 들어가야 되는데, 존스는 그 움직임을 본인의 머리와 팔을 이용해 완벽하게 막으며 파운딩과 엘보우로 쇼군을 괴롭혔습니다. 이는 비단 쇼군만의 문제는 아니고, 요즘 UFC에서는 하위 포지션의 선수가 하프가드 플레이를 쓰기는 극히 힘듭니다. 다들 주짓수 실력도 엄청나기에 그 길목들을 다 막을 줄 알거든요. 오히려 케인 벨라스케즈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같은 레슬러 출신 파이터들은 깔린 상대를 의도적으로 하프가드 자세로 잡아놓고 위에서 두들기곤 합니다.

밑에 깔린 사람이 양 다리로 위에 있는 상대의 한 다리를 감은 이 상태를 하프가드라 부릅니다. 
사진을 보시면 쇼군의 등이 땅에 완전히 닿아있고 존스가 왼팔로 쇼군의 목을 눌러놓고 있습니다. 쇼군의 하프가드 플레이가 완벽히 봉쇄당한 모습입니다. 

이 대목에서 혹시 떠오르는 사람 없으신가요? 프라이드의 황제로 군림했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도 쇼군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프라이드 시절 효도르는 누구보다도 무기가 많은 선수였습니다. 번개 같은 펀치연타, 화려한 유도식 메치기, 기가 막힌 얼음파운딩, 깔렸을 때 순식간에 나오는 암바, 근데 쇼군과 마찬가지로 이제 다른 기술들은 다 막히고 펀치 하나 남았습니다. 그 펀치마저도 전성기 시절보다 스피드와 파워가 뚝 떨어져서 예전 같지 않죠. 최근 복귀전에서는 라이트헤비급 선수인 파비오 말도나도에게 KO당할 뻔 했었으니까요.

효도르가 최근 말도나도 전에서 들어가다 카운터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

효도르에 비하면 이번 경기에서 쇼군이 보여준 모습은 훨씬 좋았지만, 사실 상대 지안 빌란테의 경기 리듬이 너무 엉망이었던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 전부터 쇼군은 살아 있는 전설이라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던 빌란테는 그 아우라에 눌린 듯,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맷집만 과시할 뿐 전진하는 모습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레슬러 출신이지만 테익다운 시도도 단 한 번뿐이었고, 계속 쇼군의 리듬 속에서 느린 주먹만 뻗었죠. 힘과 레슬링은 더 좋은데 스피드는 느린 상대가 돌진도 안하고 엉거주춤 물러나며 싸우니 쇼군에겐 더 없이 좋은 흐름이 될 수밖에 없었죠. UFC 라이트헤비급의 최정상급 서클을 형성하고 있는 다니엘 코미어, 존 존스, 앤소니 존슨, 알렉산더 구스타프손 등은 빌란테보다 몇 배 더 까다로운 파이팅을 구사하기에, 이번 승리가 아무리 멋졌다 해도 쇼군의 최종 목표인 정상 탈환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쇼군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젊고 강한 선수들에게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쇼군이 프라이드에서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무려 2005년이고, UFC에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던 게 2010년입니다. 그 후 한참 세월이 지난 2017년 봄, 쇼군은 30대 중반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더 젊고 거대한 사자들과 맞서겠다며 끊임없이 칼을 갈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좀 지면 어떻습니까. 도전은 결과가 성공으로 나와야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나 자신의 마음 속 두려움을 딛고 당당히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모든 종합격투기 선수들을 존경하지만, UFC에서든 작은 무대에서든 나이가 들어 힘이 빠져 자꾸 패배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더욱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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