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MLB리포트]알코올에 빠졌던 전직 빅리거 플레처의 인생

조회수 2017. 2. 16. 12:53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어려서부터 알코올 문제로 빅리그 단명하고 죽음 직전의 위기를 넘기고 봉사의 삶으로

 1990년대 초 중반 이맘때면 당시 20대이던 이 선수도 꿈과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자신의 평생의 꿈이자 목표인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향한 스프링 캠프 참가로 들뜨곤 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대학 선수 생활을 보낸 (에드워드) 폴 플레처는 198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30라운드에 지명돼 일단 프로 선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1993년 마침내 필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1995시즌에는 10경기 구원 등판했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습니다. 1996년 오클랜드에서 구원 한 경기 등판을 끝으로 더 이상 메이저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토론토 산하 트리플A에서 48경기에 나서 3승4패 6세이브 2.70의 준수한 성적을 마지막으로 이상하게 더 이상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만 31세로 여전히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시점이었습니다.

1998년 마지막 토론토 시절의 폴 플레처. 그 시즌 AAA를 끝으로 야구 생애가 끝났습니다. @TOR SNS

 (그렇게 사라져버린 기록의 끝에서 조금 더 취재를 해보니 플레처는 실은 야구계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론티어리그의 오하이로 밸리에서 마무리와 셋업맨으로 활약했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이 팀도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코치로 변신해 고등학교 팀과 사설 유소년 팀에서 유망주들을 키워냈고, 뉴욕 메츠 스카우트로 미래의 메이저리거들과 계약도 꽤 성사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4년에는 독립리그 요크 레볼루션의 투수 코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을 살피는 가운데 그의 대학이나 마이너 기록 등이 MLB 공식 기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테네시 대학 출신의 이 투수 플레처는 동명이인이었습니다. 취재 해프닝이었습니다.)


 다시 취재를 하다 보니 에드워드 폴 플레처의 잃어버린 20년이 드러났습니다.

1998년 꽤 좋은 성적을 내고도 왜 갑자기 야구에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후의 행적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지는 바로 알코올, 술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레이븐우드 고교 시절 그는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에이스 투수였을 뿐 아니라 풋볼에서도 주 올스타에 뽑혔고, 농구 역시 올스타급의 실력을 뽐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맥주에 입을 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알코올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1학년 때는 술에 취재 나무에 주먹질을 했다가 손이 부러졌습니다. 한 번은 상급생들이 권하는 독주를 계속 들이키다가 만취해 선배들이 기숙사에 데려다 놨더니 다시 차를 몰고 술집을 찾아 나섰다가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필리스에 뽑혀 프로 선수가 됐지만 주벽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늘 맥주를 달고 살았고, 쉬는 날이면 항상 취했습니다. 2년차 시즌 말미에 팀 파티가 열렸을 때도 그는 만취했고 주차장에서 넘어져 얼굴이 엉망이 된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동료들에게 누군가가 자기를 폭행하고 달아났다고 거짓말을 해, 있지도 않은 범인(?)을 선수들이 찾아나서 인근이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도 술을 먹고 싸움질을 하고, 팀 버스에서 취해 소란을 피우기 일쑤였습니다.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경기 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선수들을 돕기 위해 전문가를 마이너리그에 보내 강연도 하고 상담도 합니다.

플레처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팀에서 그런 전문가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며 “그렇지만 난 문제아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전혀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빅리그에 올라갈 정도의 재능을 지녔지만 이런 알코올 중독 증세는 개인의 경기력과 능력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나의 신체와 정신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빅리그에서 오래 뛰며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나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했고, 결국은 실패한 커리어가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 플레처 베이스볼 카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빅리그에서 단명했던 이면에는 알코올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렇게 만 31세에 그의 야구 생애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몇 몇 직업을 전전했지만 늘 원치 않은, 충돌과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2007년에는 부인에게 집에서 쫓겨났고 결국 이혼 당했습니다. 모두 술 때문이었습니다. 2009년의 어떤 하루, 그날도 플레처는 술에 취한 채 출근했다가 동료와 다투고 억지 조퇴를 당했습니다. 그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 취해 깨어난 다음날 아침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한 알씩 먹던 혈압약병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60알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보드카를 병째로 마시고는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는 전 부인에게 전화를 해, 이틀 후쯤에 찾아와 달라고 얘기했습니다.오래 방치돼 백골로 발견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녀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습니다. 병원으로 급송돼 의시가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을 정도로 사경을 헤맨 끝에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아주 큰 아픔을 줍니다. 게다가 그 악몽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힘듭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그는 몇 개월간 술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치료도 흐지부지, 자신을 정신이상자 취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입원 치료와 상담 등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맥주를 주로 마시다가 독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아침에 깨면 마시기 시작해 하루 종일 마시다가 술에 취해 골아 떨어졌습니다. 점점 싼 가격의 독주를 마셨고, 정신 세계는 모든 것이 회한이었습니다. 야구의 생애도 실패였고, 야구가 끝난 후의 생에는 더욱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은 정상적인 삶을 원했지만 의존은 알코올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외면하고 회피하고 거부했습니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자동차 세일즈를 하던 2013년 봄 어떤 오후였습니다.

계약서를 써야하는데 손이 떨려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로 가서 술을 꺼내 마셨습니다.  그 며칠 후 플레처는 9세가 된 딸의 댄스파티 파트너로 참석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목요일부터 회사에서 휴가를 받았고, 토요일 파티에 맞추려면 금요일에는 차를 타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목요일 내내 술을 마신 그는 금요일에도 만취 상태였고, 결국 전 부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파티에 참석할 수 없겠다고.

부인과 딸의 반응이 어땠을지, 그리고 그 반응에 대한 그의 반응은 또 어땠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는 계속 술을 마셨고 그리고 다시 인사불성이 돼 어머니와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급송됩니다.

 다시 한 번 생을 마감할지 모를 위기에서 플레처는 여동생과 부인의 도움 속에 Baseball Assistance Team(B.A.T.)라는 단체와 연결이 됩니다.

B.A.T는 1986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야구인들을 돕기 위해 은퇴한 MLB 선수 몇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그 후 MLB 사무국과의 공조로 단체가 훨씬 커지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삶에 실패한 은퇴 선수들의 재기를 돕는 단체로, 플레처 역시 B.A.T.에서 보험으로 처리되지 않는 비용과 함께 6개월간 숙식 제공 등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병원 신세를 지고 9개월이 지난 후 플레처는 B.A.T.의 정식 직원이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려움에 직면한 전직 선수들을 돕는 일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식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의 스프링 캠프장을 찾아 각 팀을 돌면서 강연을 했고, 올해도 플로리다 캠프의 마이너리그 팀을 찾아다니며 강연을 합니다. MLB 윈터 미팅 세미나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금주한 지 4년째가 됩니다. 막 만 50세 생일도 지났습니다.

에드워드 폴 플레처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알코올에 갇혀 암울했던 20년간의 악몽을 씻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생을 부여받았으니 말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sportsonearth.com, bhpalmbeach.com 등을 참조했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