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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도덕성과 선수의 가치 - 강정호, 그리고 타이거 우즈

조회수 2017. 2. 7. 09: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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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짜리 골퍼 지망생 매튜 사우스게이트는 15년 전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는 새벽 5시부터 한 골프장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도착했다. 브리티시 오픈에 참가한 타이거 우즈였다.

사우스게이트의 회상이다. “우즈가 새벽 6시부터 연습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를 졸라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도착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이 마치 슬로 모션과 같았다. 느리게, 한없이 느리게. 그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영광스럽게도 기념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매튜 사우스게이트 페이스북 캡처

사우스게이트는 며칠 전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우즈를 향한 팬레터였다. “그 뒤로 1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두바이에 있다. 당신과 함께 같은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성적은 상관없다. 당신과 같은 대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목요일(2일) 첫 라운드의 모든 눈은 타이거에게 쏠렸다. 모처럼 복귀해서 두번째 대회였다. 예전의 환상적인 샷을 기대했다. 그러나 42세의 골퍼는 실망을 안겨줬다. 5오버파로 순위표 바닥을 헤맸다. 골프 채널의 해설자 브랜들 챔블리는 혹평했다. “우즈는 늙은 사람처럼 보였다. 말하지 못하는 뭔가가 스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던 우즈는 끝내 2라운드를 시작하지 못했다. 고질인 허리 통증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3시간 반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스윙이 되지 않았다. 결국 기권하고 말았다.

기어코 컴백하리라던 2017시즌이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2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사우스게이트는 두바이 오픈 4라운드까지 완주. 56위로 마무리.) 

점점 엄격해지는 강정호의 주변 상황 

상황이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강정호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현재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2가지다.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과 사고후미조치(뺑소니)다. 검찰은 여기에 대해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식 재판에서 형량을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 쪽에서 전해지는 얘기는 이렇다. “재판부가 가볍지 않은 사안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음주 운전만 3번째다. 사고를 내고 뺑소니까지 범했다. 법정 심리를 통해 처벌 수위를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죄질이 나빠 약식명령으로 간단히 처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현실적인 문제도 대두된다. 본인의 출석 문제다. 법원이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인정할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피의자는 직접 법정에 서는 것이 원칙이다. 이럴 경우 그의 시즌 일정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야수들의 스프링캠프는 2주 후(21일)에 시작된다. 여기에 초반 참석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정상적이라면 벌써 현지에 도착해 대기 모드에 들어갔어야 한다. 오승환은 이미 1월초, 김현수, 류현진, 황재균 등도 한참 전에 출국했다.

거쳐야 할 두번째 단계는 치료 프로그램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DUI (Driving Under the Influenceㆍ음주운전) 재활 프로그램이다.

에이전트인 앨런 네로는 “강정호가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코멘트했다. 그러나 이건 포장된 말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MLB 사무국은 이런 경우 해당 선수에게 프로그램을 받으라고 권고하게 된다. 그러면 징계에서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 단순한 관례가 아니다. 선수 노조와 협약에 명시된 조항이다.

DUI 재활 프로그램(rehabilitation program)은 보통 4주 정도 걸린다. 그 동안은 경기 출장은 물론, 팀 훈련도 받으면 안된다. 때문에 활동 기간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도 MLB 사무국이나 구단 자체 징계 등이 내려질 수 있다. 한 마디로 첩첩 산중인 셈이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인식의 문제

스캔들이 터졌을 때 우즈가 택한 출구 전략(?) 역시 재활 프로그램이었다. 진단명은 섹스 중독이었다. 그는 애리조나에 있는 어느 병원의 초호화 클리닉에서 45일간이나 입원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도 “프로그램 이후 안정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라다>는 의문이다. 강정호의 경우도, 우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엄연히 도덕성이라는 범주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얘기다. 그런데 난데없이 치료라는 의학적인 개념이 섞여 혼란스럽다. 마치 정치권에서 핵심을 흐리기 위해 흔히 쓰는 ‘물타기’ 같다. (물론 의학계의 시각에서 보면 어리석은 논리일 지 모르지만.) 더구나 그로 인해 면책의 범위가 주어진다는 게 타당한 것인지도 동의하기 어렵다.

파이어리츠 구단에 강정호란 존재는 소중한 자산이다. 꽤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가장 뜨겁다는 3루를 거뜬히 지켜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공격력을 지녔다. 상대 투수가 공포를 느낄 폭발력이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드문 케이스였다. 내야수로 성공적인 정착을 이뤄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경기력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본질적인 의문이 출발한다. ‘선수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예전에 그럴 때도 있었다. 까짓것 어떤가.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지. 뭘 더 바래.’

물론 맞는 말이다. 잘 던지고, 잘 치면 된다. 이기면 그 뿐이다. 그가 “야구로 보답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린 것도 그런 논리에서 비롯된 것일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리 없다. 선수의 가치는 그라운드 안에서만 매겨지는 게 아니다. 경기력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더우기 그가 프로(페셔널)라면 더 그렇다. 팬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부디 강정호는 우즈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우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불과 34세의 나이에 가장 저급한 가십의 주인공이 됐다. 부부싸움이 미디어에 중계되고, 여자들의 리스트가 연이어 폭로됐다.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린 위의 카리스마는 실종됐다. 아무도 그의 샷에 예전같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더 이상 갈채는 사라졌다. 구름같은 갤러리도, 거액의 스폰서도 자취를 찾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컷 통과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선수의, 특히 프로 선수의 가치는 팬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라운드에서의 몸짓 하나에도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들의 모습이 어린이들의 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강정호는 우즈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 강렬한 그의 스윙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응원하던 팬들의 열망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키스를 마다하고 히로시마 카프로 복귀했던 구로다 히로키가 했던 말이다. “딸들이 야구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경기를 마치고 나면 늘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 때마다 책임감을 느낀다. 내 플레이 하나가 이 아이들의 정신과 생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먼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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