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 한 장의 사진

조회수 2017. 2. 1. 09: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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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골이 장대하다. 우람한 덩치들이다. 키는 190㎝가 훨씬 넘고, 몸무게는 100~130㎏까지 가는 헤비급들이다. 인상도 험악하기 그지없다. 그들 사이에 조그만(?) 동양인이 끼어있다. 불과 178㎝. 나름대로 벌크업한 근육들도 그 틈에서는 대단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표정이다. 왜? 그가 저들 불펜 중에는 파이널 보스이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1992년 시즌을 꼴찌로 마쳤다. 이듬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93년에는 7팀 중 4위였다. 내리 5년째였다. 그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가을 휴가를 보내야 했다. 암흑기의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구단은 획기적인 리빌딩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팀의 문제는 늘 공격력이었다. 투수력은 괜찮았다. 오렐 허샤이저, 톰 캔디오티, 라몬 마르티네스 등의 선발진이 건재하던 시기다. 여기에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던 위치타 주립대의 대런 드라이포트를 전체 2순위로 지명했다. (한양대 2학년이던 우완 투수의 입단도 임박했던 시점이다.)

반면 배팅 오더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마이크 피아자를 빼면 어디 한 구석 믿을 곳이 없었다. 특히 내야진은 마치 풋볼팀 같았다. 수비 전담, 공격 전담을 나눠야 할 판이었다.

그런 다저스의 눈에 번쩍 뜨이는 매물이 하나 나왔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2루수였던 딜라이노 드쉴즈였다. 2년 연속으로 3할에 육박하는 타율과, 매년 40개가 넘는 도루를 기록했다. 나이도 25살이었다. 새 바람을 넣어줄 활력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얼마면 돼(누굴 주면 되겠니)?” 슬쩍 찔러봤다. 몬트리올은 한 명을 콕 찍었다. 불펜 투수였다. 마무리도 아닌 셋업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투수는 차고 넘치는 다저스 아닌가. 대답은 “Why not?”이었다. 흔쾌히 OK 사인이 나왔다.

이 트레이드는 다저스는 물론이고, MLB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 꼽힌다. 그 때 넘겨준 불펜 투수가 나중에 사이영상을 3번이나 받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는 외계인으로 진화(?)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해 65게임에 107이닝(리그 최다)를 던진 불펜투수는 10승 5패, ERA 2.61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왜 22세의 전도유망한 투수를 내보냈을까.

페드로의 22살 때 모습.     mlb.com

이유는 하나다. 키였다. 178㎝ 밖에 안되는 작은 키에 몸무게는 135파운드(61㎏)에 불과했다. 구단이 달리기를 금지시킬 정도였다(체중이 더 빠질까봐). 걸리면 벌금 500달러를 물어야 했다. 그래도 밤만 되면 몰래몰래 러닝을 계속했다. 눈 감아 달라고 야간 경비원에게 20달러씩 촌지를 주면서 말이다.

프레드 클레어 단장과 토미 라소다 감독은 그의 장래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런 몸으로 90마일 중후반대의 패스트볼을 지속적으로 던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은 의사의 충고가 뒷받침됐다. 라소다 감독의 친구인 프랭크 조브 박사였다(2014년 타계). 유명한 토미 존 서저리를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무엇보다 내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작은 키와 낮은 릴리스 포인트로는 오랜 기간 강한 공을 뿌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남현희의 사진이 준 감동 

며칠 전이었다.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한 장 있었다. 펜싱 선수 남현희의 모습이었다. 개인전 2위를 차지한 월드컵 대회 때 결승 피스트를 앞둔 장면이었다. 자기보다 20㎝ 이상 큰 거구의 선수들 틈에서 당당하게 우뚝 선 그녀 모습에 감탄이 쏟아졌다. <스포츠조선>은 ‘왜 남현희인가를 보여주는 이 한장의 사진’이라는 멋진 제목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

사진 = 남현희의 남편 공효석 페이스북 캡처

이 장면에서 <…구라다>는 문득 그가 연상됐다. 파이널 보스 말이다. 사실 야구가 펜싱보다 더 키나 신체 조건에 민감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 나온 그의 키는 178㎝이다. 카디널스 홈피에 나온 것도 비슷하다. 5피트 10인치다.

○ 카디널스 주요 투수들 키, 몸무게


카디널스의 40인 로스터 안에는 투수가 21명이다. 그 중 6피트(182.88㎝)가 안되는 선수는 딱 2명이다. 마이크 리크와 끝판왕이다. 특히 주력 투수들은 거의 190㎝를 넘기는 거구들이다. 에이스인 애덤 웨인라이트는 NBA에서도 충분한 키다. 

키 큰 투수는 얼마나 유리한가 

키의 유리함은 전방위적이다.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요인들로 작용한다.

1차적으로 긴 팔, 다리의 덕을 본다. 즉, 그만큼 더 앞으로 나와서 공을 던진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키는 6피트 3인치(191㎝)다. 이들이 평균적으로 투수판에서 발을 내딛는(스트라이드) 거리는 178㎝다.

같은 비율을 끝판 대장 같은 178㎝짜리 투수에게 적용해보자. 앞으로 나오는 거리는 166㎝가 된다. 여기서 일단 12㎝를 손해 본다. 그리고 팔 길이까지 포함시키면 최소한 몇 ㎝가 더 늘어난다. 한 뼘 정도 뒤에서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 똑같은 93마일이라도 타자가 느끼는 속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바로 코 앞에서 던지는 것 같다.’ 키 큰 투수들을 마주한 타자들의 느낌이다.

두번째는 각도다. 더 높은 타점에서 들어오는 공은 상대적으로 가파른 비행 궤도를 갖는다. 과장하면 수평보다, 수직적인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타자의 스윙과 만나는 폭이 줄어든다. 선과 선이 아니라, 점과 점의 조합이 되는 셈이다. 횡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더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이치다.

세번째는 손가락이다. 대체로 키와 손가락 길이는 비례한다. 때문에 그립을 잡는데 훨씬 유리하다. 공의 회전력이나 변화를 일으키기 쉽다. 아마도 끝판왕이 스플리터 계열의 벌려잡는 구질과 덜 친한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 짐작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네번째, 내구성이다.

물리학적으로 팔/다리가 길다는 것은 강한 공을 던지기 좋은 조건이다. 지렛대의 길이가 길수록 큰 힘이 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작은 선수가 그 정도 파워를 내기 위해서는 더 역동적인 ‘뭔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팀 린스컴의 다이내믹한 뒤틀림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동작은 필연적으로 체력적인 부담을 초래한다. 누적될 경우 부상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다저스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바라보면서 했던 걱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172.7㎝ 투수의 가슴에 새겨진 문구 

‘키 따위 쯤이야.’ 높이의 핸디캡을 극복한 투수들은 꽤 여럿이다. 그렉 매덕스와 로이 오스왈트는 6피트(182.9㎝) 밖에 되지 않았다.

5피트 10인치인 파이널 보스를 올려다봐야 할 선수들도 있다. 톰 고든(통산 138승 126패 158세이브)은 5피트 9인치(175㎝)에 불과했다. 자니 쿠에토, 팀 린스컴도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이 둘은 내구성 면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영건 마커스 스트로먼은 훨씬 더 작다. 5피트 8인치(172.7㎝)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26살인 그는 2014년부터 선발의 한 축을 맡고 있다. 2014년 11승 6패(3.65), 2016년 9승 10패(4.37)를 기록했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는 이런 글귀를 문신으로 새겼다.

‘심장의 크기는 키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Height doesn‘t measure heart).’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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