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MLB리포트]도대체 야구의 이런 규정들은 왜?

조회수 2017. 1. 7. 11: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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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리 스트라이크가 아웃일까? 4개의 볼이면 걸어나가는 규정은? 홈플레이트는 왜 그렇게 생겼을까?

 “베이스와 베이스 간 거리를 90피트로 만든 것은 아마도 인간이 완벽함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저명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레드 스미스


야구의 역사에 대해 강연을 할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는 야구의 기원에 대한 미스터리입니다.

미국 뉴욕 주 쿠퍼스타운의 애브너 더블데이가 1839년에 야구의 규정을 만들면서 야구가 널리 퍼졌다는 주장이 이미 허위임이 드러난 지 오래됐습니다. 영국에서는 1700년에 이미 ‘야구(baseball)’라는 단어가 기록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야구의 기원은 미궁입니다. 그래서 야구역사가들은 ‘야구는 아무래도 외계인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원 만큼이나 야구의 각종 규정에 대한 미스테리 역시 여전히 존재합니다. 야구의 근간은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세부적인 규정은 계속 변화와 발전을 이어왔습니다. 최근 MLB.com에는 몇 가지 궁금한 규정이 결정되기까지 과정을 다룬 글이 올라왔습니다. 야구팬이라면 궁금해할만한, 야구의 기본적인 규정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취재를 해봤습니다. 과연 야구의 기본적인 규정 들은, 예를 들어 볼넷 같은 규칙은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을까요?


초창기 야구는 그림처럼 투수가 언더 핸드로 공을 던졌고,  오직 헛스윙만 스트라이크로 인정됐었습니다. 


■왜 쓰리 스트라이크일까?

스트라이크 3개를 먹으면 아웃이 되는 규정은 아마도 야구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 역시 명확한 기원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1845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성문 규정집인 ‘니커보커스 규정집’에도 스트라이크 세 개를 당하면 아웃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만 해도 타자가 공을 맞춰 플레이를 성사시키는 것이 야구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타자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지켜보는 스트라이크는 없었습니다. 즉, 헛스윙만 스트라이크로 인정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1858년에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공은 스윙을 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로 인정한다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습니다. 초구가 스트라이크에 들어가는 경우 심판은 타자에게 이런 공을 휘두르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로 인정된다고 경고를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습니다. 즉 초구는 아무리 정확히 잘 던져도 헛스윙을 하지 않는 한 스트라이크가 안 되는 규정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변화는 이어졌습니다. 1880년에는 세 번째 스트라이크는 반드시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야 인정이 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노아웃이나 원아웃에 주자가 1루에 있으면 세 번째 스트라이크 공을 떨어뜨려도 자동 아웃이라는 보완 규정이 나왔습니다. 1887년에는 엉뚱하게도 ‘쓰리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포 스트라이크’로 규정을 바꿨다가 다음 시즌에 곧바로 다시 원래 규정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는 변함없이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 규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볼넷의 탄생은?

1850년대까지만 해도 ‘볼’이라는 개념이 야구에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유인구를 계속 던지면서 헛스윙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기의 진행은 마냥 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자는 잘 칠 수 있는 코스의 공만 기다렸고, 때로는 한 타자에게 40-50개의 공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860년에 벌어진 브루클린 애틀랜틱스와 브루클린 엑설시저스 간의 경기에서는 무려 665구의 투구를 단 3이닝 동안 던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라이트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 날이 어두워져 콜드게임이 종종 나왔습니다. 9이닝을 하면 도합 2000구 가까이 던질 수도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래서 1863년에 처음 ‘볼’이라는 규정이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볼넷의 원어는 'base on balls'로 볼 몇 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수가 계속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3번째로 빠지는 공마다 볼이 인정됐습니다. 그래서 타자는 9번째 빠지는 공을 보고서야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나인 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득점이 점점 줄어들고 투수가 서서히 위력을 드러내면서 규정은 계속 변합니다. 1880년 NL(National League)은 8볼로 줄였다가 7볼에 이어 1884년에는 6볼까지 내려갑니다. 1887년 NL과 AA(American Association)가 5볼로 규정을 통일하기로 합의했고, 결국 1889년 현재의 볼넷, 즉 4볼이면 타자가 걸어 나가는 규정이 확정됩니다. (그래서 ‘베이스 온 볼스’를 짧게는 ‘워크(walk)’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배리 본즈는 통산 2558개의 볼넷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9개의 공을 던져야 고의 볼넷을 내보낼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엔 고의 볼넷은 없었겠지만요.


■투수 피칭 동작의 변화는?

초창기 야구의 투수는 팔을 지면과 수직으로만 던질 수 있었습니다. 언뜻 이해가 안 된다면 소프트볼처럼 언더핸드로 던지는 것이 규정이었다는 뜻입니다. 1860년대까지만 해도 오직 언더핸드만 가능했습니다. 서부 시절 말굽던지기 놀이를 하던 그 폼대로 던지기(pitch) 때문에 투수를 피처(pitch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초기 투수의 임무는 타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맞추기 쉽게 던져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공의 스피드와 회전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는 투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1872년 반드시 언더핸드로 던져야 한다는 규정이 조금 완화됐습니다. 그리고 팔의 각도가 점점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쓰리쿼터까지 팔이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1884년 최초의 프로팀 ‘신시내티 레드스토킹스’를 조직한 해리 라이트가 투수는 어떤 각도로든 피칭을 할 수 있다고 공식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투수와 타자의 관계, 결과적으로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타자가 잘 칠 수 있도록 공을 토스해주던 투수의 역할에서 점점 경기를 주도하는 위치로 변화했습니다. 과거의 ‘야구는 타자놀음’에서 오늘날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야구의 흐름 자체가 완전히 역전되는 상황이 된 것은 바로 투구 동작의 다변화와 오버핸드 피칭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9이닝, 아홉 타자?

초창기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닝 제한도 없었습니다.

21 에이스를 먼저 기록한 팀이 승리하는 경기였습니다. 19세기 야구 초창기에는 득점(run)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에이스(ace)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득점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이 규정이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1840년대에는 대략 6이닝 정도면 한 팀이 21점 이상을 뽑았고, 21점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면 양 팀이 합쳐서 100점 가까이 내는 경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수들이 점점 발전하면서 득점은 갈수록 까다로워졌고, 1856년 한 경기가 12-12에서 해가 지면서 콜드게임이 돼버리자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몇 이닝으로 하는 곳이 옳으냐는 것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울러 한 팀에 몇 명이 뛰는 것이 적정한가의 논쟁도 함께 벌어졌습니다. 최초의 조직적인 야구팀이라는 뉴욕 니커보커스도 내부적으로도 7명이냐 9명이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그날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냐에 따라 양 팀이 수자를 맞춰 대결하는 식이었고, 경기를 뛰는 선수 수만큼의 이닝을 치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845년 이후 니커보커스는 양 팀 합쳐 14명만 되면 경기를 치렀습니다. 즉 7명이면 성원이라고 여겼는데 1856년에 이 규정에 대한 재논의를 하면서 당시 미 전역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야구팀을 위해서도 정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논쟁을 거듭한 끝에 양 팀 18명은 필수라는데 의견을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팀 당 9명의 선수가 필수이며 이에 따라 한 경기는 9이닝으로 치른다는 규정이 확정됐습니다.


초창기 홈플레이트는 원형이었다가 변화를 거듭한 끝에 1900년대 초 오늘날의 모습으로 결정됐습니다.

■왜 60피트6인치(18.4미터)일까?

개인적으로 야구에서 가장 궁금한 점 중의 하나가 왜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를 60피트도 아니고 60피트6인치, 18.44미터로 정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1800년대 중, 후반까지도 이 거리는 50피트, 15.24미터였습니다. 그나마 초창기 45피트에서 약간 늘어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1845년 니커보커스 규정집에서도 이 거리는 명시하지 않았고, 경기 때마다 로컬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1870년대까지도 투수는 그려진 네모 박스 안에서 공을 던졌고, 박스 앞 끝에서 플레이트까지 거리는 45피트(13.72미터)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투수의 투구 동작에 변화가 오고 공에 스피드와 움직임의 변화를 주기 시작하면서 점점 경기의 양상이 바뀌더니 1880년에 리 리치몬드 투수가 MLB 사상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 시즌 NL 전체 평균자책점은 2.93이었습니다. (작년 MLB에서 2점대 ERA 투수는 총 8명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투수의 투구 동작과 기술은 점점 더 발전했고 1887년에는 리그 전체적으로 오버핸드까지 허용하게 됩니다. 그러자 투수력 억제를 위해 투수 박스를 50피드에서 55.5피트로 더 멀게 옮겼는데도 여전히 공격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팬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자 1893년 결국 5피트를 더 멀게 만들어 60.5피트까지 투수판이 멀어졌습니다. 1피트는 12인치이므로 0.5피트를 더한, 즉 60피트6인치를 규정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홈플레이트는 왜 그런 모습일까?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야구의 홈플레이트는 오늘날 사용하는 네모와 세모의 혼합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실 딱 정해진 규정이 없어 나무든 철이든 심지어 돌이든 재질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규정은 하나 동그란 물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접시를 홈플레이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접시는 영어로 plate이므로 ‘홈플레이트’라는 이름의 유래가 바로 접시였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옵니다.)

그러나 홈플레이트의 재질 때문에 슬라이딩을 하는 주자들의 찰과상 등 부상이 잦을 수밖에 없자 1880년대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1885년 NL은 홈플레이트는 고무나 대리석만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887년 원형이던 홈플레이트도 다른 베이스처럼 가로 세로 12인치(30.48센티미터)의 정사각형으로 모습을 바꿨습니다. (이 규격도 후에 몇 차례 변화를 겪습니다. 오늘날 홈플레이트는 정면이 17인치, 43.18센티미터입니다.)

그런데 정사각형 홈플레이트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앞쪽의 사각형 모서리는 여전히 주자의 부상을 불러오기도 했을 뿐 아니라 사각형의 형태로는 투수나 심판이 명확한 스트라이크존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00-1901시즌에 로버트 키팅이 재질을 고무로 통일하며 홈플레이트를 아랫부분을 1루와 3루 베이스와 직각이 되도록 자르자는 제안을 합니다. 뾰족한 목표지점을 좌우로 스트라이크 판정이 더 용이해졌습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네모와 세모를 합친 듯 한 모습의 홈플레이트가 탄생한 것입니다.


■왜 162경기일까?

MLB는 한 팀이 162경기씩, 한 시즌 2430경기의 정규 시즌을 치릅니다. 1900년대 초반 MLB는 팀 당 140경기를 치르다가 1920년부터 154경기씩을 치렀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NL과 AL에 각각 8팀씩이 있었고, 1920년 전에는 같은 리그 팀들과 각각 20경기를 벌여 140경기 시즌이었고, 1920년부터는 22경기씩을 치르면 154경기 시즌이 됩니다.

그런데 1961년 새로운 팀이 MLB에 가세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AL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워싱턴 세네터스가 합류했고, 다음해에는 NL에 뉴욕 메츠와 휴스턴 콜트45s가 신생팀으로 참가합니다. 그러자 같은 리그 팀끼리 22경기씩을 치르면 198경기 시즌이 되고 마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MLB는 리그 팀 간의 경기를 22경기에서 18경기로 줄였고 오늘날의 162경기 시즌이 탄생했습니다.

그 후로 팀이 계속 늘어나면서 경기 조합은 계속 변화하지만 162경기 시즌은 변치 않고 있습니다. 2013년 이후 같은 조 팀과는 각각 19경기씩으로 치르고, 같은 리그의 다른 조 팀과는 6,7경기씩을 벌이며, 인터리그 경기는 20경기씩을 치릅니다. 합은 여전히 162경기입니다.

그러나 162경기 시즌은 너무 길다는 의견이 최근 종종 나옵니다. 특히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의 수를 계속 늘리면서 가을 야구가 아니라 겨울 야구가 되는 양상이 종종 나오자 다시 종전이 154경기 시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렇게 야구는 끝없이 진화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의 도입 등 변화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 50년 후, 100년 후의 야구는 또 어떤 양상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Wikipedia, Bleacher Report, The Wall Street Journal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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