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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박석민의 왼발이 열렸다

조회수 2016. 10. 22. 19: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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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 급이다." 준플레이오프를 마치고 한 방송 해설자가 데이비드 허프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럴만 했다. 후반기에 보여줬던 위력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가을 들어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허프 여권 뺏으러 갑시다.' 피가 뜨거운 몇몇 팬들이 온라인 청원운동도 불사할 태세였다.

1차전은 허망한 역전패였다. 그래도 위안거리가 있었다. 내일 2차전은 동쪽에서 온 귀인(캘리포니아 UCLA 출신)이 그들을 지켜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귀인의 초반은 별로였다. 1회부터 3회까지 연달아 선두 타자를 내보냈다. 잘 맞은 타구들이 담장 근처에서 아슬아슬 하게 잡혔다. 몇 차례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지나갔다.

흔들리던 에이스는 돌파구를 찾았다. (오른손 타자의) 몸쪽이었다. 구심 박기택 씨는 제법 깊숙이 박히는 공까지 흔쾌히 결제해줬다. 빠르게 바짝 붙였다가, 바깥쪽에는 체인지업으로 떨어트린다. 그런 패턴으로 홈 팀 타자들의 중심을 완전히 흔들어놨다.

허프의 몸쪽 공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스트라이크가 선언된 5회 손시헌의 초구.   KBS 중계화면

그렇게 중반을 넘겼다. 마운드가 안정을 찾아가자, 반격의 기회가 생겼다. 종반 싸움은 해볼만한 구도로 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쪽에 가장 바짝 붙어서 치는 타자

7회 말 홈 팀의 공격. 중심 타선으로 이어진다. 1사 후 투수가 너무 몸을 사렸다. 바깥쪽 슬라이더로 유인구를 던지다가 테임즈를 (볼넷) 1루에 보내줬다.

다음은 이호준. 가장 겁나는 타자다. 앞 타석에서도 오른쪽 담장까지 가는 타구를 날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초구를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강렬한 타구음과 함께 만세 동작이 나온다. 하지만 역시 몇 인치가 부족하다. 우익수(채은성)가 뛰어 올라 가까스로 잡아낸다.

수비 쪽은 일단 한숨 돌렸다. 7회는 무사히 넘길 것 같다. 2사 1루에서 나올 다음 타자는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왜? 일단 1차전부터 안타가 없다. 타이밍도 별로 안 좋아 보인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아래 비교 사진을 보시라.

박석민(오른쪽)은 가장 앞쪽에 붙어서 치는 타자 중 한명이다. 이호준과 비교하면 차이가 느껴진다. KBS 화면

그는 유독 홈 플레이트 쪽에 바짝 다가서는 스타일이다. 남들보다 한 뼘은 붙어서 친다. 그럼 바깥쪽 공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몸쪽에는 약하기 마련이다. 만약 볼 컨트롤이 별로인 투수라면 부담스럽다. 안쪽으로 던지다가 재수 없으면 몸에 맞는 볼이 나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수가 누군가. 좌표 찍고 던지듯이 정확한 로케이션을 자랑한다. 게다가 구심은 오늘따라 부쩍 안쪽에 후하다. 결과는 안봐도 뻔한 것 아니겠나.

그는 미끼를 던졌고, 상대는 덥썩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140㎞짜리 커터가 초구에 가슴 쪽을 파고든다. 박기택 심판원의 오른손이 힘차게 올라간다. 2구째. 이번에는 대각선 공격이다. 외곽 낮은 쪽으로 127㎞ 체인지업이 날아든다. 역시 스트라이크. 볼 카운트는 이미 0-2로 타자는 코너에 몰렸다. 마지막 피시니 블로만 남겨놨다.

3구째. 다시 몸쪽이다. 139㎞ 커터처럼 보인다. 초구보다 약간(공 반개 쯤?) 더 안쪽이다. 구심의 손이 올라가도 그만일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면했다. 마운드의 투수는 빙긋이 웃음을 짓는다. 타자의 생명은 아슬아슬하게 연장된다.

뒤이어 2개의 파울이 나왔다. 4구째 몸쪽 141㎞를 걷어냈고, 5구째는 146㎞짜리 가장 먼쪽으로 오는 빠른 공을 튕겨냈다.

그리고 2개의 견제구 다음에 날아온 운명의 6구째. 147㎞짜리 높은 공에 그의 방망이가 번쩍였다. 창원 마산구장은 어마어마한 함성에 뒤덮였다.

홈런 순간 박석민의 왼발은 완전히 열려있다. 미리 예측했다는 뜻이다. 허프의 투구는 몰린 공이 아니었다. KBS 중계화면

그 순간을 정지 화면으로 멈춰보자. 허프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존 구석에 박히는 코스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너무나 완벽했다. 그건 100% 몸쪽에 빠른 공이 올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뤄진 스윙이었다. 왼발은 완전히 열렸다. 배트의 각도도 최적화시켰다. (너무 감겨서) 타구가 페어지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그러니까 외곽쪽 빠져나가는 체인지업이었다면 전혀 반응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체인지업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몸쪽을 잘 던지더라. (볼카운트가 몰리면서) 체인지업은 삼진이라고 생각하고 직구에 늦지 말자고 생각했다." 경기 후 그가 밝힌 말이다.

그건 도박이나 다름 없다. 볼카운트가 1-2였다. 뭔가를 예측하고 거기에 올인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삼진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0-0이던 7회였다. 2사 1루다. 짧은 걸로는 연속 안타가 나와야 점수가 된다. 상대 투수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확률이 낮더라도 장타에 걸어야 한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기다렸다. 상대가 그걸 물어주기만을. 다행히 파울을 내면서 타이밍을 맞춰 갔다. 그게 성공의 확률을 높였는 지 모른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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