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한국이 오히려 내려서서 플레이 한다면?

조회수 2016. 10. 7. 15:43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한국 대 카타르, 베스트 11 (출처 KFA)

한국은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항상 고비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극복했기에 언젠가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 예선을 계기로 조금씩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칫하면 월드컵에 못 나갈수도 있다.’

물론 지난 브라질 월드컵 예선은 험난했다. 만약 시리아 전 김치우의 종료 직전 프리킥 골이 없었다면, 우즈베키스탄이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더 넣었다면 한국의 월드컵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은 7회에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과거보다 평준화되고 비디오 분석의 발달이 강팀보다는 약팀에게 많은 이득이 된다고 하지만 난 그래도 한국이 아시아에 있는 한, 월드컵은 꾸준히 나갈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 개인 기량의 차이가 갈수록 좁혀진다지만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환경의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 축구는 갈수록 세밀해진다. 그리고 경기장 안은 물론, 밖에서 만들어지는 세밀함이 승부에 영향을 끼친다. 스포츠 과학이나 영양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세밀한 업무를 위해선 걸맞은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결국 돈이 필요하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축구에 돈을 많이, 그리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나라가 몇 개나 있을까?’

한국의 전체적인 축구 시스템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표면적인 환경은 많이 좋아졌다. 현재 한국의 축구 환경은 아시아에서는 단연 상급이다. 중동과 중국은 돈은 많지만 아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고 의식도 부족하다. 일본은 기본을 잘 다졌지만 재능과 기질, 타고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동남아는 자국 리그의 성장을 기반으로 대표팀의 향상까지 노리지만 아직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현재 한국 대표 선수들은 2002년 월드컵 이후 바뀐 한국 축구의 환경을 조금씩 맛보며 성장한 세대들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든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 유럽 국가 선수들과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진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아시아 내 다른 팀들의 선수보다 피지컬적으로 우수하고 기술 능력도 나쁘지 않으며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육성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월드컵은 계속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스타일'을 만들수 있을까? (출처 KFA)

# 이러다가 정말로?

2승 1무, 6득점-4실점.

최종 예선 3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다. 뭐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강팀으로 예상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과는 아직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중국 전은 후반전 순간 집중력을 잃으며 흐름을 놓쳤다. 시리아 전은 떡잔디와 상대의 침대 축구에 당했다. 하지만 카타르 전은 정말 아찔했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불안했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극심한 두통이 시작됐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맹신하여 상대보다 준비를 조금이라도 소홀히하면 정말 월드컵에 나가지 못 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선수들이 다른 아시아 선수들에 비해 피지컬이 우수하지만 상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기술 또한 나쁘지 않지만 더 이상 상대보다 우월하지 않다. 그 정도 차이는 경기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경기에서 증명되었다.

# 전략

한국은 정우영 위에 네 명의 미드필더를 포진시킨 공격적인 4-1-4-1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미드필드를 안정적으로 장악하여 동시 다발적인 침투를 통해 공격을 진행하고자 했다. 전반 시작 후, 15분은 좋았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정우영이 공을 만졌고 구자철, 기성용과의 거리도 적절하게 유지됐다. 손흥민과 지동원은 좌우 공격 형태를 넓게 잡고, 한쪽이 막히면 반대로 빠르게 전환 패스를 시도하며 카타르의 수비 블록을 조금씩 파괴했다. 카타르가 자신들의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밀집되자 과감한 중거리 슈팅도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전반 11분에 터진 기성용의 첫 골은 위 요소들이 잘 혼합된 장면이였다.

하지만 5분 만에 알하이도스에게 내준 페널티킥이 뼈아팠다. 카타르의 단순한 접근이었고 한국 수비진이 예방할 수 있던 장면이었기에 아쉬웠다. 1-1 이 된 이후부터 경기는 한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타르 선수들은 동점 골 이후 빠르게 자신감을 회복하며 결국 전반전 리드까지 갖고 갔다. 무엇보다 카타르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인상적이었다. 베테랑 세바스티안 소리아는 한국 수비수들의 머리 위에서 플레이 했다. PSG의 공격수 카바니와 비슷한 외모로 안면 보호대를 착용한 채 경기에 나섰지만 이날만큼은 카바니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소리아 뿐 아니라, 전방에 위치한 타바타, 알 하이도스의 개인 기량도 뛰어났다.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공을 잘 지켜내며 한국의 협력 수비를 잘 빠져 나갔다.

경기 전, 선수들은 분석된 비디오 영상을 통해 상대 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습득한다. 하지만 영상과 현실에는 늘 차이가 있다. 킥오프 후 10분 정도 지나 상대와 몇 차례 경합을 하다보면 오늘 상대에 대한 감이 온다. 아마 한국 선수들은 지난 중국, 시리아 전과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중국 전 전반전에는 한국 선수들의 적극적인 압박이 돋보였다. 중국은 한국의 압박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타르는 한국의 압박을 풀어나왔다. 몇 차례 압박이 실패하자 한국은 더 이상 높은 지점에서 수비를 시작하기 어려웠다. 카타르의 개인 기량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경기 초반 선수들이 가장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앞선 두 경기에서 모두 패했지만 포사티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카타르는 동기부여부터 잘 되어 있었다.

한국이 들고나온 4-1-4-1 포메이션이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미드필드 지역의 안정적 장악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다보니 모든 것이 꼬이고 말았다. 특히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 될 때, 팀의 밸런스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 정우영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은 카타르의 전진을 제어하기 위해 전반 중반 이후 3선에서 1선으로 한 번에 연결되는 다이렉트 플레이를 시도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K리그에서 최고의 폼을 보이고 있는 김신욱은 카타르 전 후반 변화의 중심이였다.

# 변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변화가 있었다. 기성용의 동선이 정우영 근처까지 내려오며 미드필드 형태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최전방 석현준 대신 김신욱이 투입되었다. 전반전 점유율은 한국이 60 대 40 으로 앞섰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수치였다. 실제 경기 영향력은 그보다 적었다. 나는 포사티 감독이 후반전 첫 15분을 전반전처럼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한국이 승리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타르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수비 라인을 스스로 내렸고 때마침 투입된 김신욱은 카타르의 중앙 수비부터 중앙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김신욱이 최전방에서 경합하면서 카타르 수비진은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미드필드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높아졌다. 전반 초반 잘 이루어진 좌우 스윙작업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채널 사이에서 시간적 여유가 발생하며 후반 11분과 13분 연속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전반전 카타르는 훌륭했지만 후반전 그들 스스로 라인을 너무 빨리 내렸고, 이것이 김신욱의 투입과 맞물리며 한국에게 커다란 이득이 되었다.

# 변수

그리고 아이디어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후반 21분 발생한 홍정호의 경고 누적 퇴장이었다. 이 날 홍정호는 소리아에게 당했다. 전반전 두 번째 골 실점 상황 때 측면에서 태클 저지에 실패했고 후반전에도 빌드업 과정에서 평범한 패스를 실수한 후, 냉정함을 잃은 사이 또다시 소리아의 침투를 막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그의 날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물론 선수가 출전하는 모든 경기에서 평점 8점을 찍긴 어렵다. 보아텡, 티아구 실바 같은 세계적인 수비수들도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하지만 훌륭한 수비수들은 좀처럼 한 경기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그 경기에서 극복해낸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경기를 하겠지만 결국 그걸 극복하는 작은 뻔뻔함이 차이를 만들수도 있다. 다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상대 슈팅을 몸을 날려 저지하는 것도 정신력에서 비롯된 플레이로 볼 수 있지만 더 큰 정신력의 의미는 분명 다른 것이다.

홍정호의 퇴장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곽태휘를 투입하여 백스리 형태로 전환했다. 상당히 신선한 아이디어였지만 세부적인 운영은 아쉬웠다. 한 명이 부족한 경기 상황 상 포지션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겠지만 지동원의 오른쪽 윙백 이동과 폭발력이 떨어진 손흥민이 후반 44분까지 경기장에 남아 있던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닌 듯 했다. 우리에겐 기동력 있는 윙백 자원과 활발한 침투로 공간에서 경합 할 수 있는 공격 자원이 교체 명단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 명이 부족했지만 스스로 뒷공간에 대한 리스크를 두고 전진하는 카타르의 후방을 보다 효율적으로 공략 할 수 있었다. 마지막 20분을 분명 끈기있게 잘 버텨냈고 덕분에 소중한 승점 3점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세련된 역습 패턴 하나 쯤은 발휘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 능력은 충분한 것 같은데.

# 제안

2년 전,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인터뷰에서 패스와 점유율에 기반한 공격축구를 천명했다. 최근 2년 간 열린 대표팀의 모든 경기를 챙겨봤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그런 경기는 별로 기억 나지 않는다. 비슷한 경기라면 2-0으로 승리한 2015년 동아시아컵 중국 전 정도?

점유율에 기반한 공격축구로 팬들을 만족시키려면 오늘 새벽 열린 이탈리아 대 스페인 경기에서 전반전 스페인에 준하는 경기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팬들이 만족하고 그 철학으로 상대를 제압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스페인이 아니다. 아마 한국의 모든 육성 시스템이 스페인 식으로 바뀌고 모든 연령별 지도자를 스페인 사람이 맡는다고 해도 우리는 스페인처럼 축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능력의 문제와는 별개인 기질의 차이다. 나는 축구에는 민족성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그동안 각종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을 때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항상 다이나믹 했다. 빠른 공수 전환, 적극적인 측면 활용, 공간 싸움과 압박.

스페인은 패스, 이탈리아는 수비, 독일은 시스템. 위와 같이 한 나라의 축구를 이야기 할 때 대표적인 단어가 연상 되듯이 우리에게도 그것이 필요하다. 한국 축구는 ‘투혼’이다? 아쉽게도 투혼은 너무도 추상적인 단어다. 나는 여전히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스타일’의 기본을 만들고 임기를 마치길 바란다. 지난 2년간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늪축구로 준우승을 일궈냈고 월드컵 예선에서 무실점 기록을 이어갔다. 훌륭한 성과지만 분명 운도 따랐고 전력의 차이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해질수록 ‘내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표류한다.

현재 한국 대표팀은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팀인가?

이제 대표팀은 이란 원정을 앞두고 있다. 4년 전에도 더 이전에도 이란은 항상 힘든 상대였다. 케이로즈 감독의 ‘주먹 감자’ 사건은 지금도 불쾌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이란은 전술적으로 확실한 스타일이 있는 팀이었다. 일반적으로 개인 기량이 상대에 비해 부족한 팀은 수비적으로 내려선다. 블록을 쌓고 커버에 공을 들이며 두 세가지 역습 패턴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란의 개인 기량은 아시아에서 정상급임에도 수비에 많은 밸런스를 둔다. 4년 전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이 이란에게 고전한 이유? 월드컵 본선에서 이란이 아르헨티나를 끝까지 괴롭힌 이유? 일정 수준의 개인 능력을 갖춘 팀이 내려서서 수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잘 준비된 두 세가지 역습 패턴으로 공격을 전개한다면 그 팀은 누구와 언제 어디서든 경쟁력있게 싸울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 속에서 피지컬과 기술이 우수한 편이지만 세계 무대 기준으로 보면 부족하다. 대표팀의 경기력이 향상되어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점유율 바탕의 화려한 패스 플레이가 가능하더라도 월드컵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가 상대보다 점유율을 높게 갖고 압도하며 운영할 경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분명 이란의 사례가 분명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코 모든 균형을 수비로 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비에 대한 계획과 역습이 우선시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카타르 전에서 변칙적으로 사용한 백스리도 고려하면 좋겠다. 11월 A매치 데이가 지나면 최종예선도 반환점을 돈다. 한국이 올해 남은 일정에서 이란, 우즈벡에게 패하지 않는다면 내년 3월에 재개될 경기 때 한국보단 상대가 더 급한 상황이 된다. 그렇게된다면 우리도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할 환경이 만들어진다.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공격축구, 물론 좋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내려서서 ‘잘‘ 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