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김인호의 유쾌한 골프

김세영 기자 입력 2016. 5. 27. 11:20 수정 2016. 5. 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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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호는 '골프계의 개그맨'으로 통한다. 그는 코스 안팎에서 언제나 유쾌하다. 넵스헤리티지 첫날 경기 후 그에게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홍천=박태성 기자


그는 떠벅떠벅 앞으로 걸어가더니 대뜸 맨 앞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제가 바로 김인호입니다. 오늘 2언더파 공동 22위. 뭐, 이 정도면 잘 했죠. 어? 그런데 제 이름이 왜 안 보이죠? 아무튼, 여기 오니까 좋네요. 하하. 앞으로 가끔 오겠습니다."

그의 갑작스럽지만, 넉살 좋은 입담에 기자들은 폭소를 떠뜨렸다. 김인호는 '골프계의 개그맨'으로 통한다. 언제나 유쾌하고 쾌활하다. 그와 라운드를 하는 동료들은 배꼽을 뺀다.

지난주 SK텔레콤 오픈 첫날. 대회 주최 측은 파3 17번홀 티 박스에서 '폼 콘테스트'라는 걸 실시했다. 대회 중 가장 재미있는 폼을 취한 선수를 뽑는 이벤트였다. 선수들에게 협조를 당부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이벤트였으나 첫날 흥행은 대참패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티 샷을 하기에 바빴다. 쑥스러운 듯 선뜻 나서는 이 없었다.

딱 한 명만 예외였다. 김인호였다. 그는 가수 싸이의 안무를 따라한 듯한 포즈를 취했다. 주최 측은 이튿날 김인호의 사진을 티 박스 입구에 걸어두고 다시 한 번 이벤트를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하나 둘 나름의 폼을 잡았고, 콘테스트는 비로소 흥행을 거뒀다. 김인호의 '웃음 바이러스'가 다른 선수에게도 퍼진 것이다.

"아버지가 엄청 웃겨요. 전 아버지 성격을 쏙 빼닮았고요. 가족들도 다 그래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저, 그리고 여동생 다섯 식구가 사는데 할머니도 어디 가면 안 빠져요. 아버지는 친구들 모임에도 저를 데려가고요."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입문 6개월 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2오버파를 쳤다. 그의 집에서는 '드디어 우리 집에 인물이 나왔구나'라며 흥분했단다. "공부랑은 완전 담을 쌓고 살았죠. 마침 부모님이 살도 뺄 겸 골프 한 번 해보라고 했는데 그 후부터 이 길을 걷고 있어요."

그의 캐디백은 주로 여동생이 멘다. 그의 여동생인 김유나(20)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정회원이다. 코스에서 그와 동생이 펼치는 버디 세리머니도 선수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투어 동료들은 그의 동생을 가리켜 '머리만 긴 김인호'라고 부른다. "세리머니 기가 막히죠. 자주 안 나와서 문제죠. 동생이랑 서로 엉덩이도 부딪히고, 분위기에 취해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 지난주 SK텔레콤 오픈 1라운드 '폼 콘테스트' 당시 가수 싸이의 안무를 따라한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인호. 그의 활약(?) 덕에 다른 선수들도 이벤트에 동참했다.


그는 비록 정규 투어는 아니지만 올 시즌 KPGA 챌리지 투어 상금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1회 대회에서 우승했고, 2회 대회에서는 공동 3위에 오르는 등 서서히 실력으로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코스에서 웃기는 행동을 하는 건 갤러리들과 호흡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갤러리들과 호흡하는 걸로 으뜸은 '풍운아' 존 댈리다. 해저드 등으로 인해 드라이버를 잡지 않아야 홀에서도 그는 갤러리들이 "드라이버"를 외치면 "진짜로 원해?"라고 물은 뒤, 드라이버를 꺼내들고 호쾌한 샷을 날리곤 했다.

댈리는 또한 샷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클럽을 내동댕이치고 코스를 떠나기도 했다. 간혹 대회 관계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지만 그의 인기는 타이거 우즈에 버금가거나 때로는 그를 능가했다. 갤러리와 호흡할 줄 알아서였다. 리키 파울러도 갤러리와 격 없이 소통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코스에서 선수들은 정숙을 강요받은 듯하다. 감정 없는 얼굴이 대부분이다. 갤러리들은 그들의 표정만 보고선 버디를 잡았는지 보기를 했는지 알 수 없다. 골프는 그래서 따분한 경기로 치부되곤 한다.

골프는 우리네 인생에 비유되곤 하지만 정작 국내 프로 무대에서 '희로애락'은 없는 듯하다. '신사의 품격'과 '절제'만 강조되는 게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앵무새처럼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개그맨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특제 양념과 같은 존재들도 필요하다.

김인호의 등장은 그래서 신선하다. 김인호는 이렇게 말했다. "시합이 적든 많든, 우선 갤러리가 많아야 힘이 나요. 박수가 없으면 맥이 빠지죠. 그렇다고 무조건 응원을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또한 갤러리와 저희 프로 골퍼 사이에는 일종의 거리감도 분명 있어요. 그걸 깨려면 저희가 먼저 다가가야죠. 우리가 그들을 편하게 대해줄 때 그 분들도 편하게 관전하면서 박수도 많이 보내지 않을까요?"

그의 '웃음 바이러스'가 더 퍼졌으면 한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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