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위기의 K리그, 경고 아닌 레드카드 꺼내야

조회수 2015. 11. 25. 09: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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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얻지 못한 채 경기를 계속 이어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신뢰를 얻은 후에 게임을 여는 게 나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와 달랐을 뿐이다. K리그를 포함한 한국의 프로스포츠들은 경기를 지속하는 것을 가장 최선의 가치로 보고, 어떤 일이 있어도 리그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팀의 질이 아닌 숫자에도 큰 집착을 보였다. 우리는 지금 지속성과 규모에 방점을 찍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2015년 11월, K리그는 위기다. 전북현대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전∙현직 심판들이 특정 구단에게 금품을 받고 판정에 편의를 봐줬다는 혐의로 구속됐고, 한국축구의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칭송 받던 안종복 전 경남FC 사장은 외국인선수 비리와 심판 금품수수혐의를 모두 받고 있다. 이 와중에 경남FC가 외국인 선수에게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경기에 뛰지 못하게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과 '설마'하며 의심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다르다. 후자가 파급력이 훨씬 세다. K리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두 후자다. 팬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봤던 일들이 적어도 '망상'이 아닌 단계에 와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더라도 이런 혐의를 받아 축구계 종사자들이 구속되는 것의 의미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은 "불관용의 원칙"을 천명했지만, 팬들의 마음은 K리그를 떠나고 있다. 신뢰가 흔들렸다.

이런 비리가 터진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복합적이다. 분명한 게 있다면 K리그가 이번 사건을 예전과는 달리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K리그는 지난 2011년 승부조작으로 신음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제대로 조사했고 징계했다고 평가 받고 있지만, "당시에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한 이들도 있다. 연맹은 47명의 선수와 선수출신 브로커를 영구제명 했지만, 더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연맹은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스포츠토토 대상경기에서 K리그를 제외하겠다"라며 "리그 중단은 검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 축구인은 "큰 홍역을 치렀으니 앞으로 2~3년 간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뿌리를 뽑지 못하면 이후에는 다시 나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었다. 그 경고는 사실이 돼가고 있다. 2011년 당시에는 심판은 신원조회 차원에서 수사가 마무리 됐었다. 당시에 축구계 내부에서라도 좀 더 파고들었다면 이런 지경에는 다다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연맹이 지난 2014년부터 10명 이상의 심판을 교체하며 자정에 나선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 정도로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당시 연맹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심판을 교체하면 리그를 운영하기 어렵다"라고 했었다. 앞서 언급했던 지속성에 대한 집착과 같은 맥락이다. '일간스포츠' 윤태석 기자가 한 전직 심판의 인터뷰를 보면 리그 운영을 고려한 개혁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심판도 잘못이지만 심판들을 이용하는 사람(구단이나 감독), 그리고 심판들에게 돈이나 접대를 받은 사람(심판 고위직들)은 더 큰 문제 아니냐. 지금 축구계는 이 문제를 살짝 덮어버리고 어떻게든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하겠지만 그러면 답이 없다. 몇 년 뒤 또 똑 같은 문제가 생길 거다. 이 참에 확실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 심판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예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승부조작 사건을 겪었다. 중국도 리그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사건과 조사 그리고 재판이 2009년 말부터 2010년 초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처벌은 확실했다. 남용 축구협회 부주석, 장건강 중국 심판위원회 주석을 포함해 축구협회 고위관계자 구단 관계자, 감독, 선수 그리고 심판까지 모두 처벌을 받았다. 공한증을 끊었던 가오홍보 감독도 징계를 받았고, 가장 촉망 받던 심판이었던 루준도 체포됐다. 축구협회 부주석과 심판위원회 주석은 모두 10년이 넘는 실형을 선고 받았다. 몇몇 구단은 강등시켰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비리척결 의지를 보였다.

아픔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외국인 선수 비리와 심판 금품수수 사건이 사법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대한축구협회와 연맹은 새 판을 짜야 한다. 옐로우 카드가 아닌 레드 카드가 필요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2016년 K리그 개막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팬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K리그의 가치는 지속성이 아니라 신뢰 안에 있다. 믿음은 요청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주어야 얻을 수 있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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