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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S담쓰談]심판보다 먼저 판단하는 포수, 그 치명적 위험성

조회수 2015. 9. 3. 13: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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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영원한 난제' 오심에 대처하는 포수들의 자세

프로야구 한화는 지난달 28일 NC와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창원 원정을 앞두고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30)를 1군 명단에서 뺐다. 쉐인 유먼을 대신해 5경기에서 완투로만 3승, 완봉으로만 2승을 따낸 로저스였기에, 또 한화가 치열한 가을야구 막차 티켓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미스터리한 조치라는 평가였다.

한화는 일단 "체력 안배 차원"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번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 최소 10일 이후에야 복귀할 수 있는 까닭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로저스는 지난달 6일 한국 무대 데뷔전인 LG전 이후 3번 4일 휴식 뒤 등판했고, 1번은 5일을 쉬고 나섰다. 지난달 27일 NC전에서 6이닝 3실점했다고는 하나 여전한 구위를 뽐냈다. 5위 경쟁에서 확실하게 경기를 잡을 수 있는 카드가 최소 2번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로저스가 1군 제외 전 마지막 등판이던 NC전에서 과격한 행동을 한 때문이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 로저스는 당시 무실점 투구를 펼치던 6회 2사에서 상대 김준완의 체크 스윙을 3루심이 인정하지 않아 볼넷을 허용하게 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평정심을 잃은 로저스는 안타와 도루, 적시타로 2실점했고, 이어진 2사 2루에서 나성범과 승부에서도 회심의 몸쪽 직구가 볼이 되면서 추가 적시타로 연결됐다. 로저스는 구심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불만을 터뜨렸고, 포수 조인성과 한화 통역이 심판들을 말려 말과 몸싸움 등의 충돌은 다행히 이어지지 않았다. 로저스는 이닝 종료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뒤에도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분을 참지 못했다.

<'볼이라니까...' 지난달 27일 창원 NC 원정에 선발 등판한 한화 에스밀 로저스(가운데)가 볼 판정에 대해 심판(왼쪽)에게 불만을 드러내자 포수 조인성이 다가와 말리고 있는 모습.(자료사진=뉴스1)>

이런저런 설들이 분분한 가운데 결정의 당사자인 김성근 한화 감독은 로저스 1군 제외 뒤 5일 만에야 입을 열었다. 결정 이후 3일 동안 김 감독은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한 출입 기자단과 공식 인터뷰 거절이었다. 그러던 김 감독은 지난 1일 KIA와 청주 홈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에게 일단 "로저스의 1군 말소는 컨디션 조절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10일 이후 곧바로 1군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뼈있는 말도 덧붙였다. 김 감독은 로저스의 흥분 때문일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을 일축하면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로저스의 볼 판정에 대한 불만을 묵혔다가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로저스가 그처럼 흥분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로저스와 김 감독의 불만 표출은 일리가 있다. 6회 2사 NC 김준완은 로저스의 바깥쪽 슬라이더에 배트가 절반 이상 돌았다.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구심과 3루심의 눈으로는 솎아내지 못했다. 0.2초 내 이뤄지는 스윙에 대한 애매한 판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찰나를 육안으로 판별하기는 어렵다. 이런 체크 스윙의 석연찮은 판정은 KBO는 물론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KBO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김준완의 경우는 사실 애매하다"면서 "한미일 리그의 공통 난제"라고 말했다. 현재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비디오 판독 대상이 아니다. 한미일 모두 해당된다. 최첨단 디지털 장비가 나날이 더 깊숙하게 관여하는 추세에도 야구의 아날로그적인 부분에 대한 최후의 보루다.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는 측면도 있다.

<'돌았다니까' NC 김준완이 지난달 27일 한화와 창원 홈 경기 6회말 2사에서 상대 선발 로저스의 슬라이더에 체크 스윙을 하는 모습.(사진=스포티비 중계 화면 캡처)>

이런 체제 하에서 애매한 볼 판정 문제는 인간이 야구를 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심판도 최대한 정확하게 판정을 내리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기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판이 호기롭게 스트라이크를 불렀다가 양 쪽 벤치에 양해를 구하고 볼로 번복하는 일도 벌어진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어쨌든 더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다만 심판도 인간이기에 명심해야 할 점은 있다. 자칫 판정에 영향을 미칠 불필요한 행동들이다. 특히 볼 판정에 적잖은 기준이 되는 포구를 담당하는 포수에 해당된다. 현란한 포수의 미트질은 구심을 종종 현혹할 수 있다. 약간 빠진 볼도 전광석화처럼 존 안으로 미트를 집어넣어 스트라이크를 이끌어내는 기술자들이 적지 않다.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 현 SK 육성총괄이나 메이저리그 조나단 루크로이(밀워키) 등이다. 올 시즌 은퇴한 진갑용(삼성) 역시 미트질이 괜찮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심판들은 이른바 타짜 안방마님들의 기술에 대한 일종의 저항심도 생긴다. 예전 모 심판은 "포수의 미트 위치를 볼 판정에 참고할 때도 있다"면서 "그러나 반대로 미트질에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포수들의 성급한 판단과 그에 따른 동작은 자칫 심판들을 자극할 수 있다. 존에 들어왔다고 먼저 판단해 판정이 내려지기 전에 더그아웃 쪽으로 향한다든지 삼진이 된 것처럼 포구 후 곧바로 공을 투수가 아닌 1루수나 3루수에게 던지는 행동들이다. 이는 심판을 압박하기 위한 교묘한 심리적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되레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심판의 권위까지 자극하는 행동일 수 있는 까닭이다.

KBO 관계자는 "당시 로저스와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조인성이 애매한 볼 판정 때마다 포구 후 곧바로 일어나 더그아웃 쪽으로 가더라"면서 "심판이 미트의 위치 등을 참고해 판단할 시간을 아예 차단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더러 오심이 나올 수는 있다"면서 "때문에 포수들의 이런저런 동작이 나오면 심판들도 '여기에 흔들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더 엄밀하게 따져 판정을 내리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강조했다.

<'포수가 내린 판정' 한화 포수 조인성이 지난달 27일 NC와 창원 원정에서 6회 상대 김준완의 체크 스윙을 확신하며 일어서서 스트라이크를 뜻하는 동작을 취하는 모습.(사진=스포티비 화면 캡처)>

예단의 위험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4월 21일 한화 정범모는 LG 원정에서 5회 2사 만루 풀 카운트 상황에서 유먼의 공을 스트라이크로 확신하고 받자마자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러나 판정은 볼이었고, 인플레이 상황이 이어져 3루는 물론 2루 주자까지 홈을 밟는 상황이 벌어졌다. 판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가운데 섣부른 판단이 부른 참사였다.

반대로 판정 이후 포수의 반응이 화를 키우는 경우도 있다. 선수가 생각한 존과 심판의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포구를 멈춘 뒤 한동안 움직이지 않거나 고개를 꼬며 장탄식을 내뱉는 경우 등이다. 나도 모르게 판정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동작이 대부분이나 심판에 대한 무언의 압박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게 화근이 되는 사례가 적잖다는 것이다. 이후 판정이 더 엄격해지는 악조건을 넘어 자칫 퇴장이라는 불상사로까지 번질 수 있다. 물론 정도가 심한 항의에 참다 못한 심판이 퇴장을 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불필요한 동작들이 쌓이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강민호(롯데)가 9회말 류현진(LA 다저스)의 잇딴 볼 판정에 고개를 비틀며 아쉬움을 드러냈다가 퇴장을 당한 사례다. 이는 물론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정호의 피츠버그 포수 프란시스코 서벨리가 볼 판정에 항의하다 경기에서 빠져야 했다.

여기에 명심해야 할 것이 심판마다 존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관된 스트라이크존이 최상이나 심판마다 미세한 개인 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구의 마술사' 송진우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심판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을 맞춰 투구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KBO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높은 쪽 스트라이크를 놓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지만 역시 심판마다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스트라이크가 아니고 사이드라고요?' 한화 포수 정범모가 지난 4월 LG 원정에서 5회 2사 만루에서 나온 볼 판정에 대해 구심에게 항의하는 모습.(자료사진=MK스포츠)>

물론 심판들이 선수들의 갖가지 기술과 동작에 현혹되지 않고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게 최상이다. 그러나 기계가 하지 않은 이상 100% 완벽한 볼 판정은 이뤄질 수 없다. 현장의 감독과 선수들도 경기에서 언제나 완벽한 판단과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심판들도 마찬가지다. 뼈아픈 실책과 실수의 연속, 그리고 만회하는 것이 야구고 인정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최선이 아니라 최선을 향하려는 노력이다. KBO 심판위원회는 "중계 기술의 발달과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으로 심판들이 더 세밀하게 판정을 내린다"면서 "최대한 스트라이크와 볼 오심을 줄이자고 강조한다"면서 자신들만의 노력과 고충을 토로한다.

고금과 동서를 통틀어 야구라는 종목의 영원한 난제로 꼽히는 볼 판정. 애매하고 석연찮음을 넘어 이른바 오심 판정은 현 시스템에서는 나올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면서 최대한 경기와 승부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만드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판정에 대한 포수의 예단과 반응은 양날의 검, 남을 벨 수도 있지만 자신이 피를 볼 수도 있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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