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인터뷰] 차우찬 "내가 LG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2016. 12. 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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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차우찬은 4년 총액 95억원의 거액을 받고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LG에 적응을 잘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6일 잠실구장에서 포즈를 취한 차우찬. 잠실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올 시즌이 끝나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차우찬(29)이 LG로 이적했다. 그는 계약이 발표되기까지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감자였다. 정작 본인은 아무런 결정이 나지 않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구단들의 영입전쟁으로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차우찬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스토브리그가 자신으로 인해 너무 시끄러워지다보니 ‘빨리 해외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최종 결정은 국내 잔류였다. 그리고 원 소속팀인 삼성이 아닌 LG와 4년 총액 95억원이라는 대형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 결정으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차우찬이 LG로 이적하기 전, 삼성이 그에게 제시한 계약조건(100억원 이상, 2년 뒤 해외진출 적극 지원)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LG가 준 95억원이 축소 발표라는 얘기부터 삼성이 차우찬에게 홀대했다는 얘기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갖가지 ‘말들’이 생산돼 쏟아져 나왔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어떤 게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직접 차우찬에게 진실을 듣기로 결정했다. 26일 잠실구장에서 마주한 그는 차분하게 그동안의 스토리를 털어놨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과분한 계약이라는 거 안다…난 운이 좋은 선수”

-FA 계약 축하한다. 연말연시이기도 하고 정신없이 지냈겠다.

“여기저기 많이 연락이 왔다. 축하도 많이 받았고, 욕도 많이 먹었다.(웃음)”

-대형계약을 맺었다. 예상은 했었나.

“너무 많이 받았다. 내 통산 성적이나 커리어를 생각하면 나에게 과분한 계약이라는 것을 안다. 운이 좋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말 좋은 선배들, 좋은 투수들이 있는데 그 위에 내 이름이 있는 게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렇다고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고 책임감이 생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런 미래를 그려본 적 있나.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꿈도 못 꿨다. 풀타임 선발을 뛰면서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을 줄 몰랐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그렇게 형성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야구를 시작한 게 키가 커서라고 들었다.

“반 애들 중에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었다. 야구부 코치님이 맨 뒤에 앉은 애들에게 야구할 사람 손들라고 하더라. 그때 수영부를 하고 있었는데 수영이 재미없었다. 그날 점심 먹고 야구하러 운동장에 나가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때가 1996년이니까 20년째다.”

-전국에서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던 걸로 안다.

“군산에서는 잘 했다.(웃음) 또래 중에서는 가장 잘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야구를 했던 것 같다. 시키니까 하는 정도? 고등학교(군산상고) 가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계기가 있었나.

“그때부터는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돈도 벌어야했고, 프로를 못 가면 대학을 가야하는데 둘 다 못 가면 야구를 그만둬야하니까 위기감이 생겼다.”

-어릴 때 포지션은 뭐였나.

“계속 투수였다. 왼손잡이는 다 투수 시키니까 그랬던 것 같다. 다른 포지션은 외야수도 하고, 1루수도 했는데 거의 투수했다. 방망이는 못 쳤다.(웃음)”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굉장히 높은 순위로 뽑혔다. 당시 차우찬이 삼성에 간 건 선동열 전 감독의 요청 때문이라던데….

“입단하고 나서 ‘너 아닌 다른 선수를 뽑으려고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웃음) 그때 키(184㎝)는 컸는데 몸무게가 69~70㎏밖에 안 나갔다. 최고 구속도 138㎞ 정도였다. 삼성에 와서 2년차 때 키(187cm)도 크고, 살(80㎏)도 많이 붙으면서 구속이 150km까지 오른 거였다. 당시 군산상고 감독님이 김성한 감독님이었는데, 선동열 감독님께 ‘좋다’고, ‘한 번 보라’고 추천하셨던 걸로 안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했다. 선 감독님은 날 뽑아주셨고 기회도 많이 부여해주셨다.”

-1차 지명은 구단이 대하는 태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신인지명 때도 그렇고, FA 때도 그렇고 야구인생 전환점에서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다.

“아까도 말 했지만 그런 부분에서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신인 시절 차우찬.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혹독했던 프로생활…그 시간 통해 많이 배웠다”

-기대를 받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3년 동안 1승도 없었다.
“그렇다.(웃음) 입단하기 전 12월 한 달간 푹 쉬었다. (신인투수가?)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푹 쉰 뒤에 1월 스프링캠프에 가서 무작정 세게 던졌다가 부상이 왔다. 그것 때문에 3년간 재활했다. 그래도 그때 1, 2군을 오가고 재활하면서 선배들의 모습도 보고 배운 점이 많다. 덕분에 4년차 때부터 쭉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2010년부터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데뷔 첫 10승도 처음하지 않았나.

“그때도 시즌 초에는 1군에 못 올라갔다. 스프링캠프 때 너무 열심히 뛰다가 앞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됐다. 4월까지 2군에서 재활을 하고, 1군에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어깨가 아프더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한 달간 양일환 코치님과 1대1로 훈련을 했다. 이후 1군에 올라왔는데 시즌 끝날 때까지 안 아프고 잘 던졌다. 양 코치님께 감사한다.”

-2011년도 잘 했다.

“아쉬운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2011년에도 전반기는 잘 했는데 풀타임 선발을 처음 하다보니까 후반기 몸이 안 좋았다. 결국 개막전을 선발로 시작하고, 한국시리즈는 중간계투로 투입됐다. 당시 류중일 감독님이 시리즈 직전에 감독실로 따로 불러서 ‘선발에서 빼는 게 아니라 선발을 한 명 더 붙여서 갈 생각’이라고 알려주셨다. 1+1 선발이 그렇게 탄생한 거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덕) 매티스가 아프면서 내가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차우찬은 이날 3이닝 5삼진 퍼펙트로 한국시리즈 1차전 MVP를 차지했다.)

-잘 나가는 듯 했는데 2012년 부진했다.

“내가 허튼 짓을 했다.(웃음) 2011년 후반기가 안 좋아서 다이어트를 하고, 투구 폼도 바꿨다. 당시 투수코치였던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님이 ‘네가 원하면 해봐라. 하지만 분명히 시즌 때 안 좋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내가 말을 안 들었다. 시즌 개막전 선발로 나갔는데 역시나 안 되더라. 힘도 없고, 투구밸런스도 안 맞았다. 전반기 ‘폭망’하고(웃음), 2군에 오래 있다가 후반기부터 조금씩 좋아졌다.”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인지 2013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다시 10승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에서 1, 5차전(2~4, 6~7차전 5경기에서 12.2이닝 2실점, 방어율 1.42) 빼고 등판해서 팀 우승에 기여를 했다.

“그때도 6선발과 중간계투를 왔다 갔다 했다. 2012년에 너무 못해서 한국시리즈, 아시아시리즈 끝나고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준비도 잘 했고,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2015년과 2016년은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선발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만 해도 사실 스프링캠프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너무 쉬어서 실패할 줄 알았다. 지난해 프리미어12 다녀오고,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훈련소까지 다녀와서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좀더 많이 훈련하려다가 결국 스프링캠프 때 부상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4월을 포기하더라도 두 달 정도 쉬었으면 빨리 돌아올 수 있었는데 FA이고, 개막전에 나서고 싶어서 계속 안 쉬었다. 그게 독이 됐다. 올 시즌은 안 될 줄 알았는데 김현욱 코치님, 김태한 코치님, 류 감독님이 ‘급하게 하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끝까지 믿어주셨다. 덕분에 시즌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후반기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투수보다 컨디션이 좋았던 것 같다.

“후반기 잘 해서 10승을 했지만 많이 아쉽다. 팀이 9등 했으니까.”

차우찬은 “돈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LG와 맞았다”고 했다. “삼성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면을 선수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던 LG 송구홍 단장의 말
도 차우찬의 마음을 움직였다. 잠실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돈은 문제 아니었다…LG와 3박자 맞아떨어졌다”

-올 시즌을 마무리 하고 LG와 95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소문이 무성했는데 계약의 진실은 뭔가.

“음…. 그동안 소문에 직접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이 날 때까지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조심스럽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 내 스스로 정해놓은 FA 기준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돈이 아니었다. 마음 가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컸고,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국내보다 적을 게 분명한 해외에 나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해외 진출이 생각보다 잘 안 됐다.”

-메이저리그와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뭐가.

“처음부터 준비했던 게 아니라 급하게 하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조건도 스플릿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따로 체결해 보장조건이 다른 계약)이었고…. 어차피 돈은 생각 안 했기 때문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오)승환이 형, (김)현수, (강)정호가 만류했다. 스플릿계약으로 가면 개런티 보장도 안 되고, 스프링캠프부터 라커룸도 따로 써야한다고 했다. 마음만 있었지 그런 자세한 부분을 몰랐다. 종합적으로 고민하다가 미국을 포기했다. 일본도 함께 알아봤는데 그 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오치아이 코치님이 ‘한국에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그 돈 받고 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국내에 남기로 결정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때문에 미국을 안 갔다는 얘기도 있다.

“에이전트인 김동욱 대표(스포츠인텔리전시)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협상을 하면 WBC 출전 여부를 첫 번째로 물었다고 했다. 미국에 오면 루키니까 WBC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난 처음부터 대표팀은 간다고 말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었다. 계약조건이 크게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대표팀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국내에서 LG와 삼성이 영입전쟁이 벌어졌다.

“해외진출을 꾀하면서 삼성, LG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돈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진행 상황만 알려드렸다. 감사하게도 두 구단이 모두 내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해주셨다. 오해를 정말 풀고 싶은 게 삼성과 불화가 있어서 옮겼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다. 난 11년간 삼성에서 뛰면서 연봉협상에서 트러블이 한 번도 없었다. 계약 전까지도 김한수 감독님, 김태한 수석코치님과 마지막까지 통화를 했다. 삼성에 있으면 스스로 안주할 것 같았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었고, LG가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셔서 팀을 옮겼다.”

-LG 송구홍 단장은 차우찬에 대해 ‘지금이 최고가 아니라 정점을 향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 부분이 감사하다. 난 특급투수가 아니다. 그런데 송 단장님이 ‘앞으로 LG가 우승에 도전하고 싶은데 와주면 좋겠다. 야구는 걱정 안 한다. 성적보다는 그동안 삼성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면을 선수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삼성에 있으면서 한 눈 안 팔고 야구만 했다. 야구장에서는 항상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신 것 같아 마음이 움직였다. 물론 삼성도 최선을 다해주셨다. 그런데 나에겐 ‘100억원+a’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LG로 오면서 삼성보다 돈을 적게 받았다. 만약 돈이 중요했다면 삼성에 남았을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 LG와 맞았다고 보면 된다.”

-잘 알고 있겠지만 삼성도 차우찬을 꼭 잡고 싶어 했다.

“삼성에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 삼성에서 FA 선수를 잡기 위해 이만큼 공을 들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 구단이 직접 얘기하면 부담이 될까봐 (윤)성환이 형, (오)승환이 형, 정현욱 코치님에게 부탁해서 ‘마음 좀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 것도 안다. 김한수 감독님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그래서 뿌리치고 나오기가 정말 힘들었고 마음도 아팠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걸 택하고 싶었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매년 평균 6이닝 이상·30경기 이상 출전 목표”

-차우찬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내구성이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도 늘 묵묵히 공을 던졌다. 올해도 24경기에서 6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건 4번뿐이다. 7이닝 이상을 던진 것도 11번이나 된다.

“삼성에서 몸 관리를 잘 해주셨다. 선수는 힘들다고 말을 잘 안 하니까 처음부터 무리가 되지 않도록 알아서 휴식을 주셨다. 그 덕분인 것 같다.”

-스스로도 몸 관리를 굉장히 잘 한다고 들었다.

“잠을 많이 자는 편이고, 술도 시즌 때는 안 마신다. 담배는 원래 안 했다. 그런 부분이 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년부터는 LG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

“최근 LG를 보면 2010년, 2011년 삼성 느낌이 난다. 설렌다. 새로운 팀에 오니까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생긴다. 팀 적응을 잘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나.

“안 아픈 게 목표다. 아프지만 않으면 안주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선발로테이션만 잘 지키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인 숫자는 생각 안 하고 있는데 평균 6이닝 이상, 30경기 이상 출전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면 안 아프고 한 시즌 잘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있다. 대구 집을 정리하면,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다. 운동은 계속 하긴 했는데 3개월 동안 너무 정신없이 보내서 걱정된다. 1월 초 LG 시무식 끝나면 괌으로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훈련할 계획이다. WBC 일정에 맞춰서 몸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려고 한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LG 차우찬

▲생년월일=1987년 5월 31일 ▲출신교=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 ▲프로 입단=삼성(2006년~2016년)~LG(2017~) ▲2016년 성적=24경기 12승6패 방어율 4.73(152.1이닝 80자책점), 65볼넷, 120삼진 ▲통산 성적=353경기, 70승48패, 방어율 4.44(1068.1이닝 527자책점), 519볼넷, 933삼진 ▲국제대회 경력=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제1회 프리미어12 야구 국가대표

잠실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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