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에게 길을 묻다] "좋은 투수? 스텝스로 활용하면 나올 것"

장강훈 2016. 6. 22. 09: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 선동열 기술위원이 스포츠서울 3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오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지난 31년의 세월을 회상하던 한국야구위원회 선동열(53·전 삼성 KIA 감독) 기술위원은 “당시와 비교하면 프로야구도 참 많이 변했다. 경기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고 타자들의 파워 등 질적인 성장도 이뤄냈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우승을 일궈낸 선 위원은 “198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처음 성인 대표팀에 선발돼 입성했을 때와 비교하면 말그대로 천양지차다. 선수들이 체격도 좋아졌고 우리 때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야구를 한다. 후배들이 잘 성장한 것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선배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 위원은 고려대 재학시절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기량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했다. 그는 “박노준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가 막내급이었다. 대선배들의 불펜투구만 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현역시절 선동열은 칼날 제구와 불같은 강속구, 마구처럼 휘어지는 슬라이더로 대표된 ‘국보’였다. 고 3때까지는 직구 최고구속이 140㎞ 중후반대에 머물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체중이 늘면서 구속도 함께 높아졌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에는 67, 68㎏ 정도로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대학에 가서 웨이트트레이닝도 하면서 74, 75㎏로 체중이 늘었고 82년에는 80㎏까지 올랐다. 그랬더니 150㎞ 중반까지 구속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워낙 타고난 신체조건이 좋고 유연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날 제구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선배들의 엄격한 지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1985년 7월 4일자 스포츠서울 1면. 이틀 전 데뷔전에서 쓴잔을 맛 본 투수 선동열이 “승리 대신 자신감을 얻었다”며 당차게 인터뷰를 했다. 사진 속의 투구폼은 지금봐도 ‘완벽한 밸런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스포츠서울 DB)

그는 “돌아가신 심재원 선배가 당시 대표팀 포수였다. 불펜피칭을 하면 원하는 코스가 아니면 아예 포구를 하지 않으시더라. 그러면 70~80m 가량 뛰어가서 공을 갖고 와야 했다. 몇 차례 반복하면 꿀밤도 맞았다. 우리 때에는 소위 시키면 시키는대로 야구하지 않았나. 요즘은 선수들에게 한 가지 알려주더라도 선수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알려줘야 하는데 우리는 맞아가면서 배웠다. 소위 ‘헝그리 정신’이라고 해야하나?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신적으로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표팀 경험과 함께 프로 첫 시즌 실패를 통해 ‘국보’로 격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그는 “계약문제도 있었지만 프로 데뷔 시즌(1985년)에 어깨가 조금 좋지 않았다. 전반기를 쉬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에는 전력분석 시스템도 없었기 때문에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타자들을 파악했던 게 훗날 큰 도움이 됐다. 사실 첫 해 성적이 좋았다면 자만심에 빨리 무너졌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선 위원은 1985년 7월 2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삼성전을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7.1이닝 9안타 5실점으로 패전의 아픔을 맛봤다. 그는 “프로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세 경기에서 승을 따내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출발이 어려웠기 때문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데뷔시즌을 7승 4패 8세이브 방어율 1.70으로 치른 선 위원은 이듬해 24승 6패 6세이브 방어율 0.99로 ‘무등산 폭격기’ ‘국보’ 등의 애칭을 달고 다녔다. 그는 늘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좋은 신체조건에 워낙 좋은 팀을 만난 덕분”이라며 겸손해 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 김인식 기술·규칙위원장이나 한화 김성근 감독 등 야구원로들은 “선동열 같은 투수를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재능도 뛰어나지만 정말 노력파였다고 극찬했다.

선위원은 좋은 투수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로 기본기와 기초체력 부족을 꼽았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타고난 것도 대단했지만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한 노력도 엄청났다. 선 위원은 “요즘 좋은 투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결국은 기초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후배들이 전체적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느정도 성과를 얻었지만 기초에 대한 인식은 조금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은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등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투수는 공을 많이 던지면 안된다’는 이론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선 위원은 “투구 밸런스가 갖춰지지 않은, 힘으로 던지는 투수들은 많이 던지면 몸이 상한다. 투구수의 문제가 아니라 밸런스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시즌, 특히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러닝을 많이 하면서 힘을 길러야 한다.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잘 보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 아닌가. 야구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부터 선 위원은 늘 ‘밸런스’를 강조했다. 그는 “1군 주축들은 얘기가 다르겠지만 2군에 있는 선수는 밸런스 잡는 것, 특히 하반신 이동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제구가 떨어진다 싶으면 불펜에서 공 하나를 더 소중히 생각하고 집중력을 갖고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싶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훈련법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고 기술보다 마인드컨트롤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속은 어느정도 타고나야 하지만 제구는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는 게 선 위원의 지론이다.

입단 당시부터 ‘메가톤급 투수’로 각광 받던 선 위원은 구원으로 데뷔 승을 거둔 게 스포츠서울 1면에 실릴 정도였다.(스포츠서울 DB)

좋은 투수들이 더욱 성장하기 위한 훈련법 한 가지를 묻자 그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야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캐치볼이다. 캐치볼 중에도 스텝 스로라는 게 있는데 이 훈련을 투구에 적용시키면 밸런스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스텝 스로는 외야수들의 송구 훈련법의 일종이다. 공을 잡아 오른발 왼발(우완 기준) 순으로 스텝을 밟으면서 공을 던지는 동작인데, 가령 희생플라이를 처리한 외야수가 홈으로 강하게 송구할 때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선 위원은 “100명에게 스텝 스로로 공을 던지라고 하면 99명은 ‘훨씬 쉽고 강하게 던질 수 있다’고 답한다. 하체 밸런스가 갖춰지지 않으면 절대 공을 쉽고 빠르게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제구가 불안정한 투수들은 스텝 스로로 공을 던지면서 이 때 밸런스를 투구에 응용하려고 노력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상체 위주로 투구하는 투수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zzang@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